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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8월의 마지막 날

3. 추억을 상속받다

by 자민


가끔씩 어렸을 적 사진들을 들춰본다.


이번 여름에는 꽤 자주 꺼내보게 되었다. 친척들과 함께 여름 계곡 물놀이를 다녀온 후에도, 어머니와 동해안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한 번씩 옛날 사진들을 스캔해둔 폴더를 뒤지곤 했다.


어릴 때 사진들 속의 장면들은 늘 아련한 환상과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다. 실재했던 광경인 건지, 자라는 가운데 사진을 보며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인지 확실치 않다. 사진에는 없지만 또렷한 다른 장면들이 있는 걸로 사실과 환상을 구분한다면, 어슴푸레하게나마 실재했던 기억이라고 스스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내려 잡아 봐도 대여섯 살 무렵부터다.


기록적으로 더웠던 지난 8월 어느 일요일 오후, 아이와 함께 할 소일거리를 찾다가 반 충동적으로 63 빌딩 아쿠아리움 표를 끊었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아이들과 함께 아쿠아리움에 들어가는데, 오래전 그 날 생각이 났다. 아이들과 한나절 재미있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다 보니, 내 무의식을 자극한 어떤 계기가 있었구나 싶었다. 무심결에 사진 한 장을 봤던 것이 오늘 나들이의 시작이었구나.


오래된 사진첩에 63 빌딩 수족관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집에 와서 사진들을 찾아봤다. 같은 날짜에 경기도 문산역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똑같이 1986년 8월 31일이었다. 그제야, 수족관에 놀러 갔던 날이 문산으로 외삼촌 면회 간 날과 같은 날임을 깨달았다.


외삼촌이 전방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문산으로 면회를 갔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외할머니가 아들 면회 가는 데 혼자 가기 애매하니 사위가 하루 시간 내서 모시고 다녀오라 했을 테고, 이제 갓 돌 지난 동생 보기도 벅차니 큰애는 당신이 책임지라며 엄마가 등 떠밀지 않았을까 싶다. 인터넷으로 과거 달력을 찾아보니, 역시나 86년 8월 31일은 일요일이다. 토요일도 어김없이 일하러 나가던 시절이니, 아버지는 하루밖에 없는 휴일 새벽에 장모님 모시랴 애 챙기랴 당일치기 외삼촌 면회 나들이 준비에 꽤나 서두르셨겠다 싶다.


교통도 불편하던 시절에 다섯 살 아이를 데리고 다녔으니 얼마나 칭얼댔을지, 비슷한 또래 사내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사진에는 없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장난감 칼에 대한 기억뿐이다. 사진이 채 담지 못한, 짧은 머리 외삼촌과 장난감 칼로 장난치는 모습은 내 머릿속 한편에만 소중하게 남아있다.


장모님을 모시고 문산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여정 자체가 특별한 여행이었을 터, 수족관에는 모처럼 큰 구경거리 보러 간다고 들렀을 게다. 90년대까지도 63 빌딩은 서울 가면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 중 하나였으니. 정작 수족관과 관련해서는 뭔가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가는 기억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전혀 없다. 아버지도 아마 다녀온 데 의의(!)를 두지 않았을까 싶다.


수족관에서 시작된 상상은 흘러 흘러 문산역으로 이어진다. 서른두 살 젊은 아버지는 역 앞에서 담배 한 대 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다. 물어볼 수 있었다면, 지금만큼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리라. 아빠가 생각에 잠겨있든 말든, 등에 기대어 과자나 먹고 있는 아들은 세상 편해 보인다. 부전자전이라더니 꼭 요새 우리 아들 같다.


늘 맘 편히 기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 이후로도 한참, 꽤 오래도록.





# 덧붙이는 글 (2019/11)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표정과 목소리를 담은 영상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항상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손에 지니고 다니는 시대인데도 막상 휴대폰 사진 폴더는 모두 아이 영상으로 가득할 뿐, 아버지를 찍은 영상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손주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할아버지의 모습 같은 영상들은 찍었다기보다는 찍혔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아버지는 휴대폰 속에서조차 조연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 들을 수 없는 목소리라는 것을 그때에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냈다. 갑자기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어색하니까. 순간의 어색함을 못 견디고 외면한 결과는 기록의 부재로 돌아와 오늘 내 가슴을 친다. 좀 더 많은 영상을 담아뒀더라면 좀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에게 더 많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 같은 후회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친한 벗들에게는 부모님 동영상을 되도록 많이 찍어두라고 습관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영상과 이미지로 남은 것이 너무 적어서, 그래서 글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떠나면 어떤 형태로든 유산을 남긴다. 아버지가 내게 남기고 떠난 유산은 분명 적지 않았다. 사진도 몇 장 안되고, 영상도 몇 개 없지만, 머릿속에는 꽤나 많은 추억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할머니 쌈짓돈처럼 하나하나 툭툭 선물처럼 떨어지곤 했다.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았더라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이제는 수십수백 억으로도 살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추억이라는 유산을 꽤나 많이 남겨주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시간과 물질 양면에서 모두 지금보다 부족했던 시대의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것만큼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썩 자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퇴근길마다, 주말마다 나 스스로에게 되묻곤 한다. 나는 나중에 유산이 될 만한 좋은 추억을 지금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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