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태어날 때부터 아빠는 아니니까
사람은 죽을 때 유품을 남긴다. 유품(遺品). 사전적인 의미로는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본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부정하고 실낱같은 삶의 희망을 부여잡는다. 사고사와 같이 난데없는 죽음이 아니더라도, 생전에 유품까지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세상을 뜨는 경우는 대체 몇 퍼센트나 될까. 아마도 무소유를 실천하며 스님처럼 떠나는 사람은 소수점 자릿수에 지나지 않을까 싶다.
유품을 정리하는 것은 남은 이의 몫이다. 상주는 슬플 겨를이 없다. 장례식장으로 옮기기 위해 병원에 사망진단서를 발급받는 데서부터 유품 처리가 시작된다. 당장 고인이 입고 있던 환자복부터가 유품이다. 벗겨서 반납하거나, 반납을 포기하는 대신 환자복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인정머리 없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쳐가지만, 그것 말고도 짧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신경써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셈을 치른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더욱 심란하다. 집에는 망자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덕지덕지 쌓여있다. 이사 한 번 안 가고 수십 년을 살아온 집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좋은 날 입으려고 고이 아껴 입으려고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옷가지들, 손수 집안 고칠 때 쓰던 각종 공구류, 오래되어 색이 바랜 책들, 낡은 지갑...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은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유품을 정리해야, 떠나보낼 수 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 그래야 그 공간에서 다시 숨쉬며 살 수 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물건은 생전에 쓰던 지갑에서 나온 로또 한 뭉치였다. 같은 회차도 아니고, 시차를 두고 샀을 법한 꽤나 여러 회차분의 로또가 지갑에 고이 들어있었다. 아이고 이 양반...
생전에, 건강했을 때도 아버지는 종종 로또를 사곤 했다. 오천 원씩. 용돈도 별로 많지 않던 분이 담배값보다 비싼 로또를 샀다. 그리고는 '로또만 되면 너네 엄마 아파트 한 채 해주고 네 동생 차도 한 대 사주고...' 이렇게 나름 진지한 상상을 이야기하시곤 했다. 그 모습이 그땐 솔직히 영 마뜩잖았다.
로또, 즉 복권은 투자하는 금액 대비 기대수익이 굉장히 낮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절대 구매해서는 안 되는 상품이다. 투자효율 측면만 놓고 보자면 복권을 산다는 것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카지노 게임에 참여하는 것과 같고, 복권 발행주체인 정부에게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그럼에도 사람들은 복권을 구매한다. '나는 운이 좋아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극히 희박한 확률에 베팅한다. 이런 수요가 국내에서만 한 해 4조 원가량 발생하는 복권 판매 수익을 떠받치고 있다.
즉, 아버지는 변변치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세금을 더 내고 있던 게다. 소주를 마시고, 운전을 할 때처럼 당신도 모르게, 아주 성실하게. 다른 여느 소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수십 장의 로또를 가지고 로또 판매점에 갔더니, 5만 원짜리 한 장, 그리고 5천 원짜리 세 장이 당첨이 되었다고 알려준다. 완전히 날린 건 아니구나. 6만 5천 원을 아들에게 마지막 용돈으로 준 셈이긴 한데, 뭔가 어리석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로또 뭉치를 안 사고 그냥 현금으로 두었더라면 두 배는 되었을 법 한데, 역시나 마지막 가는 때까지 돈이랑은 참 인연이 없는 분이셔... 하고는 지나갔다.
유품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 한동안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봄부터 가끔씩, 길을 지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로또 표시가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굉장히 진지하게 로또가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모습이 문득 선하게 떠오르곤 했다. 요새 좀 보고 싶은가 보다... 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어느 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퍼뜩 깨달았다.
아버지에게 로또는,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같은 것이었구나.
마지막 남은 그 로또 뭉치가, 타고 남은 성냥이었구나. 아버지가 내게 얘기하던, 풋사과같이 설익은 로또 당첨자의 미래는 동화책 속 소녀가 그리던 꿈과 본질이 다르지 않았겠구나. 가장으로서의 꿈, 생전에 이루고 싶었던 소박한 꿈. 5천 원을 내고 일주일짜리 꿈을 꿀 수 있다면 아버지에게도 크게 손해 보는 베팅은 아니었겠구나.
생전의 아버지 마음에 공감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돌아가시고도 한참이 지나야, 한 가지 한 가지씩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꿈에 잘 나오시는 편은 아니라, 그냥 가끔 보고 싶을 때면 혼자 피식 웃으면서 로또 판매점에 들어간다. 그리고 만 원씩 로또를 산다. 지갑 속에 꽂아 넣고는 한 주동안 돈 계산을 할 때마다 언뜻언뜻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아들, 앞으로 살면서 진짜 힘들 땐 말이야, 아빠가 이 성냥 켜서 너 따뜻하게 해 줄게. 걱정하지 말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 보고 있자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커피 두 잔 값치곤 나쁘지 않은 투자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쓰는 것이 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님을 이제서야 조금은 깨우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