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억을 상속받다
한 배에서 나왔어도 어찌 이리 다를까 싶다.
이번 주말도 어김없이 식탁 머리에서는 전쟁의 연속이다. 큰애는 뭐를 만들어 주던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고, 둘째는 뭐라도 하나 더 집어먹으려 반찬 그릇에 손을 푹 집어넣어 엄마와 아빠를 난감하게 만든다.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 보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 (요거트는 먹는다기보단 바르는 것에 가깝지만) 둘째는 그나마 낫다. 입이 짧은 큰애는 이러다 제대로 못 크는 게 아닌가 걱정에 속이 탄다. 좋아하는 만화와 장난감으로 이리저리 구슬려보기도 하지만, 밥 한 사발 국 한 그릇 먹이는 게 보고서 한 편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미션이다.
원래 마른 사람이 별로 없는(!) 집안이라 크면 낫겠지 하고 애써 위안해보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늘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병원에 갔다가 몸무게가 하위 99%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들 모두가 안다는 '잘X톤'도 사 먹였건만 여전히 눈에 띌 만한 변화는 없다.
암묵지(Tacit Knowledge, 暗默知)라는 개념이 있다. 언어로는 전달되기 어려운, 경험으로만 쌓을 수 있는 지식. 언어로 소통할 때도 바디랭귀지가 커뮤니케이션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인류가 쌓은 지식의 총량에서도 암묵지가 반대되는 개념인 형식지(Explicit Knowledge, 形式知) 보다 훨씬 크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기르다 보니 육아는 그야말로 암묵지의 끝판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아이를 키우기 전 어디서도 육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몇 주짜리 예비부모 교육은 예외로 하자.) 어찌어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첫 아이는 온몸으로 어리숙한 부모가 연발하는 갖가지 실수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운명에 처하기 마련이다.
초보 부모 딱지를 달고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부모가 되어가면서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이다. 나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내가 접했던 가장 가까운 '부모'의 모습.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중학교 3학년 때 집에 자동차가 생겼다. 우리 집에 자가용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고교에 진학하게 되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아들 때문에 통학용으로 구입한 차였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자식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마흔 훌쩍 넘어 자가운전자가 된 아버지는 당시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 보였다.
할부로 구입한 진녹색 소나타 3를 인도받은 첫 주말,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당신 인생 첫 '교외 드라이브'를 나섰다. 내비게이션은커녕, 휴대전화도 몇 갖고 있지 않았던 시절이라 지도를 보고 물어물어 대전에서 한 시간 여 떨어져 있던 칠갑산을 찾았다. 순전히 아버지가 주병선의 유행곡 '칠갑산'을 좋아한다는 이유에서.
칠갑산 산자락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머릿속에 남은 것은 칠갑산 앞 어느 식당에서의 기억뿐이다. 어쨌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칠갑산 입구에 도착했고, 허기진 우리를 데리고 아버지가 우리나라 산 어디에나 있을 법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아버지가 메뉴판을 보더니, 산채비빔밥 두 그릇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읭? 우리는 셋인데?
아버지 주머니에는 비빔밥 두 그릇 시킬 돈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별생각 없이 길을 나섰고, 밖에서 점심을 사 먹을 것이라는 생각도 안 했던 아버지 지갑에 넉넉하게 현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 사정을 봐줄 만한 인상 좋은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아니었던지, 비빔밥은 주문한 대로 딱 두 그릇이 나왔다. 비빔밥은 나와 내 동생 앞에 놓였다. 맞은편 아버지 앞에는 김치 한 종지. 그래도 동생보단 내가 좀 더 철이 들었던지, "아빠는 배 안고파요?"라고 내가 물었던 게 똑똑히 기억난다.
그리고 아버지의 대답은,
"아빠는 너희들 먹고 있는 거 보면, 하~나도 배 안 고파. 얼른 먹어."
중학교 3학년이면, 꽤 머리가 컸을 무렵이었을 텐데도 그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내 느낌은, '이 양반이 왜 이러시나...?'였다. 아마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겠지. 배는 고파도 아들딸 앞에서 속칭 '가오'잡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꽤 오래도록 이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사실은 기분파이고, 덜렁덜렁대기 일쑤였던, 그래서 애들 밥 사 먹일 돈도 미리 못 챙기고 길을 나선 아버지의 모습이 사실은 내심 좀 못마땅해서였을 수도. 지금 생각하면 아무 부질없지만, 나는 꽤 공부를 잘하던, 자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교 회장도 하던, 자신감 넘치는 아들이었으니까.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매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두 아들 딸이 밥 먹는 모습을, 한 그릇 쓱쓱 비우는 모습을 보면 진짜, 정말로, 내가 배가 부른 지 고픈지는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흐뭇하고, 흐뭇할 뿐이다. 그러다 밥을 남기면, 걱정이 앞선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변비가 또 심해지는 건지, 이러다 덜 크면 나중에 학교 가서 또래 애들에게 놀림받는 것 아닌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때, 그 식당 테이블 반대쪽 앞에서 웃고 있던 아버지는, 진심으로 내 물음에 답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들은 아비가 저 멀리 떠나고 나서야 깨닫고 있다. 비로소, 절절히, 매 끼니때마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