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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잠시나마 치유자가 될 수 있다

5. 용기를 내어 한 발 앞으로

by 자민

"형, 정말 죄송한데, 꼭 와주시면 안 될까요?"


후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병이 있어 급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지만, 가업을 이어받는 와중에 점차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고 있던 사이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후배의 충격이 적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늦은 시각, 서울 정 반대편에 있는 장례식장은 잠깐 들르고 온다고 말하기엔 꽤나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고민하다 후배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못 가보게 되었다고, 멀리서 마음만 전하겠다는 메시지를 조심스레 보냈다.


마음 착한 후배는 괜찮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바깥일보다 내 가족을 우선하는 가장이 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수년도 지난 일이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지워지지 않는 걸 보면,
그때의 내 결정은 현명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 후배가 보냈을 그날 밤을 떠올렸다. 직접 겪어보니, 그날 밤 후배의 마음속에 내 메시지가 어떻게 보였을까 싶어 까마득했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필이면 추운 계절이었고, 그에게 그날 밤은 살면서 가장 추운 밤이었을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늦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와 주길 바랬을 것이다. 잠시나마 시간 내어 찾아와 식장에서 밥 한 술 편육 한 접시 먹고 가는 것이 그렇게 상주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을, 그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먼저 느꼈을 것이다.


아차...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그랬구나. 정말, 입술을 깨물며 후회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후배에게 술을 사며 늦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아마도 그날 밤의 추위를 덥혀주기엔 너무 늦은 사과였을 것이다.


두 해 전 겨울 이후로는 지인이 부모상을 당했다고 하면 꼭 찾아가게 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주 잠깐이라도 들렀다 온다. 결혼식은 못 가는 일이 많지만, 장례식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경험을 후배와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어제 저녁, 지인의 부친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 사람이 또 추운 밤을 보내게 되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3일장 첫날에 연락을 받은지라 변변찮은 차림으로 곧바로 가는 대신, 다음날 예를 표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갖춰 입고 상가에 다녀왔다.


상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긴 어려운 일이다. 어떤 상가에 가더라도 황망함과 슬픔이 상주의 눈동자에 그득히 담겨 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된다. 어떤 슬픔을 겪고 있는지 그 자리에 서 본 사람으로서 너무 잘 알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마따나 동일한 입장이 되어, 잠시나마 관계의 최고 형태에 도달한다. 그래서 꽤 여러 번 장례식장을 갔는데도 내 몸이 반사적으로 상주의 눈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느낀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버지를 잃은 그날 밤이 고속 재생하는 것처럼 스쳐 지나가고, 아프기 때문에.


그래도 아픔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같이 아파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은 채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다.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그래도 나의 시간이 남의 슬픔을 치유하는 치료제로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그것보다 가치 있는 쓰임이 있겠나. 모든 사람은 치유자, 힐러(Healer)가 될 수 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어머니는 곧잘 생전에 아버지가 집안 시시콜콜한 경조사까지 챙기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푸념 섞어 말씀하시곤 한다. 아버지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과 함께. 세대가 다르니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아버지가 왜 그렇게 자기 시간을 경조사 챙기는데 쓰셨는지는 예전보다는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주말을 쪼개어 경조사 다녀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도 적어도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40대 이후의 아버지일 것이다.


신의 섭리에 따라 삶은 유한하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며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남은 자가 가진 슬픔의 크기는 떠난 이와 그간 함께 만들어 온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꽤나 오래도록 상실로 인한 슬픔을 삭여 가야 할 지인이 이별을 잘 받아들이고 단단히 일어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가르침의 단초를 제공해 준 인상 좋은 후배와 새해를 핑계 삼아 따끈한 술 한 잔 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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