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생각하고 쓰고 (26) - 같이 가면 길이 된다
"일터에서 죽고 다치는 것은 단지 해당 기업과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파문처럼 가족을 지탱하고 있던 것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아마르티아 센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거리를 대기근의 이유로 보았다. 멀리 있는 고통은 적극적 공감과 정책 대상이 아니라 통제 대상이다."
"저는 한 걸음 나가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회복하는 사회', 그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일하다가 죽지만 않으면, 적어도 회복의 희망은 있겠지요. 어떻게든 살아내겠지요."
대학 시절, UN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없이 멋져 보여 잠시 그쪽 진로를 고민했던 때가 있다.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 그때를 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치기 어렸는가 싶다.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해내느냐가 결국 더 중요한 건데. (간신히 대학 와서 번화한 서울 생활 적응하랴 술 마시러 다니랴 바빠서 정작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짬이 없었던 탓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는 이상헌 저자의 신간을 보다 보니 어릴 적 꿈을 더 길게 품지 않았던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얽혀있는 난제들을 정책으로 풀기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덕분에 세상이 이만큼이나마 굴러가고 있다는 걸 새삼 책으로나마 다시 깨닫는다.
노동 문제에 수십 년간 천착하고 있는 저자가 책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지점은 '노동자들의 죽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만 한 해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산업재해로 일터에서 죽는다. 따져보면 매일같이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씩, 아니 그 이상 사고로 세상을 등지는 셈이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긴 지금에도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음에도 많은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놓여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작금의 세태를 ‘식인의 풍습’에 비유한다. 이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절규한다. 그 절규에,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같이 길을 만들자는 저자의 제안에 마음이 아린다. ‘일하다가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우린 대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요즘 출판업계 영향력이 BTS 저리 가라일 정도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얼마 전 SNS에서 이 책을 추천했단다. 유명세를 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테지만,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여러분, 책 한 권 사보실 돈 생기면 <썬데이 파더스 클럽> 말고 <같이 가면 길이 된다> 사서 보세요. 특히 회사에서 밥벌이하시는 분들이라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