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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pr 01. 2023

사랑한다면, 써야 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25) - 아무튼, 사전

“어떤 단어를 사랑한다면, 써야 한다. 사라지지 않도록.”


“나는 강박적으로 단어를 모으고 모은다. 단어가 모자라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를 모았다는 것,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조직화했다는 것은 일단 위대한 일이다.”




지난해 읽은 에세이 중 첫 손에 꼽는 ‘우리는아름답게어긋나지’의 저자인 홍한별 번역가의 신작이 아무튼 시리즈로 출간됐다. (사실 나온 건 지난해 10월인데 사놓고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다가 주말에 꽂혀서 읽었음.)


그러니까 번역가에게는 필수 장비라 할 수 있는 ‘사전’에 대한 이야긴데, 그동안 몰랐던 사전에 얽힌 뒷이야기들을 깨알같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아출판사가 무리해서 동아대백과사전 만들다가 결국 사세가 기울어 두산그룹에 팔리게 되었다던가, 한국어 사전 중에 등장하는 캐릭터별 인격을 불어넣어서 예문들을 연결하면 캐릭터끼리 로맨스(!)가 펼쳐지는 사전이 있다던가 하는.


더 이상 새로운 사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슬프다. (졸업입학 때 사전 선물로 받던 세대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사전을 구입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출판사도 투자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통해 간신히 업데이트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고 한다. 자동번역이 머지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가 처한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인공지능의 시대라도 흩어진 자료를 그러모아 정리하는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더 이상 옥스퍼드 영어대사전을, 동아대백과사전을 구매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쩔티비’ 같은 신조어들을 추가해 가며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는 언어생활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잊지 않으려 기록해가고 있는, 소월이나 동주의 싯구처럼 아름답고 예쁜 말들이 사라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늦추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아직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다.


글쓸 때 사랑하는 단어들을 좀 적어볼까. 자료 취합하는 보고서에 '시나브로', '귄있는', '포돗이' 같은 단어 몰래 적으면 티가 날까 안날까 쓸데없는 고민하다 회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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