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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May 20. 2023

더 멀리 나아가지 않아도 좋아

읽고 생각하고 쓰고 (27) - 아버지의 해방일지

"어제와 오늘은 확연히 달랐다. 아버지가 존재했던 날, 그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 나로서는 최초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썬데이 파더스 클럽> 책이 막 출간된 다음날, 처음 찍힌 YES24 판매지수를 본 썬파클 멤버 중 한 분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판매지수와 엄청 차이가 난다고 괜히 봤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니 같은 아빠 이야기라도 그 아빠와 이 아빠는 레베루가…ㅎㅎ


지난해 9월 출간된 이후 국내도서 Top 20위를 반년 넘게 달리고 있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뼈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에세이와 일면 비슷하지만,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소설로서의 허구가 포함된 것을 감안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소설은 소설이니까.


장르로서 소설이 갖는 역설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허구의 이야기인데 실제 현실보다 더 현실을 잘 설명한다는 면에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 웹툰처럼 다른 미디어 장르가 대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정지아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니 여전히 소설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구나 싶다. 확실히 소설은 구체적이면서도,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긴다. 활자로만 이뤄진 매체의 힘이랄까.


소설은 전남 구례에서 빨치산 출신 부모 아래 태어난 ‘고아리’가 부친상을 겪는 동안 일어나는 3일간의 시간을 주된 배경으로 다룬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떠난 사람이 아버지다 보니 주로 그 얽혔던 생전 일화를 떠올리고, 각자 다른 형식으로 부친을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를 재발견하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자꾸 예전에 쓴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 속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좋았다가, 슬펐다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버지도 필부였지만, 정지아 작가 같은 재능 있는 자식이 있었다면 좀 더 멋진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부지 미안혀 ㅠㅠ)


좋은 장면들이 많았다. 6년 전 황망하기만 했던 그 장례식장에서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데도, 좋았다. 부모를 떠나보내고 비슷한 생각과 후회를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 만으로도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좀 더 찾아보니 사실 정지아 소설가는 소설 속에서 밝힌 바와 같이 평생을 ‘빨치산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고민해 온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문학을 전공하고 쓴 첫 데뷔작 이름이 <빨치산의 딸>이다.) 이십 대에 쓴 첫 소설이 출간된 게 1990년이니 30년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얻은 소설적 영감을 바탕으로 새롭게 쓴 소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정지아 작가로서는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나.


한평생 자신을 얽어맸던 굴레가 실은 부모로부터 온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든 것, 제 욕망으로 인한 것이라는 작가의 고백이 카운터펀치처럼 가슴을 때린다. 행복을 위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마흔 줄에도 여전히 굴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이를 대체 어찌해야 할꼬?


(우선 책 판매에 대한 욕망부터 내려놔라 이 녀석아!라고 방금 아버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환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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