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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으면 전화를 하세요

연말연시 <나 홀로 집에>를 보다 느낀 것들

by 자민


연말연시 시즌에 동생네가 놀러 와서 한동안 집이 부산했다. 순식간에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 꼬마 녀석들을 어떻게 조용히 만들까 생각하던 중에 가만있자... 예년 같으면 TV에서 <나 홀로 집에>라도 나올 타이밍인데?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자 다들 동작 그만~ 이제 너희들이 살면서 한 번도 못 봤던 걸 틀어줄 거야. 재미있겠지? 이렇게 젊은 친구들을 겨우 구슬려서 온 가족이 TV 앞에 나란히 앉아 이 오래된 고전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처럼 TV 편성표를 뒤적인 건 아니고, 바로 넷플릭스를 켰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를 보고 있자니 새삼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30년 전에 처음 만났던 케빈, 이제는 만으로 마흔 살에 접어드는 맥컬리 컬킨은 영화 속에서는 여전히 장난기 어린 여덟 살 어린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다소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케빈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반했는지 화면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나 홀로 집에>를 정주행 하니 덩달아 어린이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가만있자, 이걸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다. 극장에 가서 제대로 관람했던 첫 번째 외국 영화였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월화수목금금금 가게를 지켜야만 했었던지라, 주말에 밖에 나가 놀자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건 오롯이 아버지의 몫이었다. 당시만 해도 극장 나들이가 흔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멀티플렉스가 들어오기 전이었으므로 당연히 초라한 단관 극장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엔 대전 핫플레이스였던 아카데미극장이나 신도극장에 가끔씩 갈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늘 흥분의 연속이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유튜브 보도록 해주는 시간 반 년치를 아껴두었다가 한 번에 틀어준다면 비슷한 임팩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단칸방에 살던 여유 없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와중에 <우뢰매>를 보여주러 신도극장에, <슈퍼 홍길동>을 보여주러 시민회관에 함께 갔다. 볼거리가 많은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마 아들이 보고 싶다고 엄청나게 징징댔을게다. 아버지야 영 내키진 않으셨겠지만 아들이 보고 싶다니 따라나섰을 것이고. 사실 아버진 에스퍼맨보단 <장군의 아들> 속 김두한이 더 보고 싶으셨을 텐데. 가끔 아들과 <헬로카봇 극장판> 또는 <뽀로로 극장판>을 보러 갈 때면 그 당시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을 때가 있다. 취향에 안 맞는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처럼 고역이 또 있을까. 졸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나 홀로 집에>도 그렇게 아버지 손을 잡고 아카데미극장에 가서 봤던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나보다 어린 나이의 주인공이 나와 험상궂은 도둑들을 때려잡는 걸 보며 굉장한 희열을 느꼈던 감각이 여전히 손에 남아있다. 만화영화들에도 어린 주인공들이 종종 나오긴 했지만, <나 홀로 집에>는 실사영화라는 점에서 또 달랐다. 마치 미국에 가면 진짜 종횡무진 활약하는 내 또래 케빈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0여 년이 지나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나 홀로 집에>를 다시 보니 전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진 아들과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을 것이다. 이 추정은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30년 전에는 온종일 가게를 지키느라 이 영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어머니가 이번엔 손자들과 같이 영화를 보는 내내 깔깔 웃으셨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에는 역시 세대를 넘나드는 즐거움이 있다. (매년 방송사에서 쉬지 않고 틀어주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광고 매출을 올려줄 만한 정도의 시청률을 담보하는 검증된 콘텐츠라는 뜻이니까.) 정신없이 웃는 어머니를 보며 30년 전 아버지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도 될 것 같았다.


케빈과 말리 할아버지와의 교회당 대화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Source: IMDB


말리 할아버지: 너희 가족이 이 동네 오기 몇 년 전인데, 아들과 다퉜단다.

케빈: 몇 살인데요?

말리 할아버지: 어른이지. 서로 심하게 다퉜고 다신 안 보겠다고 했지. 그 후론 서로 못 만나고 있단다.

케빈: 보고 싶으면 전화를 하세요.

말리 할아버지: 안 받을 것 같아 두렵구나.

케빈: 어떻게 알아요?

말리 할아버지: 모르지. 그저 두려워서 그래.

케빈: 기분 나쁘게 듣진 마시고요, 두려워하기엔 나이가 많지 않아요?

말리 할아버지: 다른 건 몰라도, 두려움엔 어른이 따로 없단다.

케빈: 맞아요.

(케빈이 지하실에서 느꼈던 무서움을 극복했던 자기 경험을 설명)

말리 할아버지: 요점이 뭐냐?

케빈: 아들에게 전화하시라고요.

말리 할아버지: 전화를 안 받으면?

케빈: 더 이상의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을 거예요.


영화 속에 이런 대화가 있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 보면, 어린 내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던 장면이었지 싶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이런저런 삶의 경험치가 쌓였는지 유독 저 대화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거는 게 맞다. 두려워만 하다가는 그럴 기회조차 영영 사라질 수 있음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나 홀로 집에>는 유년기에 아버지와 함께 봤던 마지막 영화였다.


이듬해 나왔던 <나 홀로 집에 2>는 친한 친구와 둘이 가서 봤다. 부모와 동행하지 않고 스스로 극장 문을 열어젖히면서 나 스스로 한 뼘 성장한 것 같은, 인생의 한 단계를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그때는 보호자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는데, 그것이 <아빠와 영화 같이 보기>라는 유년기의 추억이 사라지는 시작점이 된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사춘기를 맞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고 하는 동안 아버지와 같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굉장히 어색한 무엇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깨달았던 게 취업을 하고 나서도 한참 지난 서른 무렵이었다. 아버지도 영화 관람을 즐기던 분은 아니었던지라,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본 영화는 고작 두세 편에 지나지 않는다.


찾아보니 <나 홀로 집에>를 봤던 아카데미극장은 1960년대 초에 생겼고, 2016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묘하게 아버지의 생애주기와 겹친다. 한 시대라는 게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간다.


아이들이 품을 떠나가기 전에 추억들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극장도 자주 가고, 오래된 영화들도 같이 종종 보고. 그렇게 함께, 같이. 두려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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