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원포인트 인생 레슨
운전면허를 꽤 늦게 딴 편이다. 대학 다닐 때 또래들처럼 필기시험은 한두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지만, 운전학원 다닐 정도의 돈이 수중에 생기면 차라리 조금 더 모아서 배낭여행을 가는 편을 택했다. 당장 굴릴 차도 없는데 굳이 실기시험까지 치며 면허를 딸 동기가 없었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야 운전면허를 따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무직이었지만 종종 거래처를 만나기 위해 외근을 나가야 했다. 언제까지고 선배들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원에 다녔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일한 국가공인자격증은 그렇게 땄다.
면허를 취득한 첫 번째 주말에 자못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운전연습을 시켜주겠다며 길을 나서자 했다. 평소와 달리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았다. 반대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핸들을 쥐었다.
햇빛 쨍하게 내리쬐는 여름이었다. 목적지는 집에서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대둔산. 그곳까지 어떻게 닿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때껏 경험한 것과는 다른, 진짜 도로를 달리느라 잔뜩 긴장한 탓이다. 인적 드문 새벽 학원 근처를 살살 돌던 것과 고속도로 주행은 전혀 달랐다. '어어어 어~' 같은 아버지의 겁에 질린 소리를 몇 번 듣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대둔산 주차장에 가 닿았고, 반환점을 찍었으니 돌아오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속으로 휴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래, 반쯤 해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데없이 언덕 하나를 만났다. 내비게이션 없던 시절, 왔던 길과는 다른 경로를 탔던 것이다. 행여나 차가 뒤로 밀릴까 무서워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십 년이 넘어가는 구형 쏘나타는 한여름에 눈길을 만난 마냥 힘겨워했다. 초보 운전자의 당황한 모습을 물끄러미 옆에서 보고 있던 아버지는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여느 때처럼 작업복 잠바를 입고 팔짱을 낀 채.
"아 한 발 좀 뗬다 밟어~"
아버지의 츤데레 같은 원포인트 레슨이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는 명함도 못 내밀, 특유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아버지 말대로 액셀을 밟은 발을 잠시 놨다가 다시 꾹 밟으니, 차가 다시 힘을 내며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갓 나온 초보가 오토매틱 차량의 기어 변속 메커니즘을 알 턱이 있나.
십수 년 전 일이지만 아버지가 해준 그 한 마디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그로서는 큰 의미를 담지 않은, 그저 처음 운전대를 잡은 아들이 안쓰러워 (혹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자기의 경험을 통해 얻은 조언 한 마디를 얹어 주었을 뿐일 텐데, 아들은 그 말 한마디를 평생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아껴 먹는 육포처럼 두고두고 머릿속에 담아 두고 가끔 삶이 막막해진다 싶을 때 조심스레 꺼내본다.
육아휴직을 내기로 마음먹던 날의 출근길, 그날 정경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한 발 잠시 떼어 봐라. 그래야 힘내서 올라가지. 아버지가 조수석에 앉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따스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사는 게 운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놈의 언덕길은 왜 그리 많은지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가 온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도록 안내해주는 자동 내비게이션 같은 장치는 없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즐겨 보던 낡은 지도책 같은 안내서 하나 정도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 같다. 가끔 길을 잃고 다른 방향으로 좀 벗어나도 두렵지 않은 것은, 먼저 살아본 경험을 엑기스로 만들어 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전수해주었던 그의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