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입학식을 치르다 떠오른 아버지와의 기억
여느 때와는 다른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어서인지, 입학식과 관련해서는 소소한 기억들이 꽤나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입학하던 날 아침의 날씨, 처음 만나는 삐걱이던 마룻바닥, 운동장의 흙내음...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에는 바쁜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갔다. 은회색 양복을 차려 입고 점잖게 담임 선생님에게 손주를 부탁하던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아버지에게는 할아버지처럼 말쑥한 모습의 기억이 별로 없다. 평소도 깔끔하신 편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입학식 날은 평소보다 더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그래도 추레한 모습으로 웃던 아버지의 그날 모습은 영 잊히지 않는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재단 계열 학교로 진학했던지라 새 교복이라고 해봤자 바지 색깔만 회색에서 감청색으로 바뀌었을 뿐인데도 아버지는 뭣이 그리 좋은지 신이 나 있었다. 키가 더 클 것을 예상하고 조금 넉넉하게 지은 교복을 입고 있던 터라 꽤나 어색했는데도 계속 싱글벙글했다.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고 하는 것이 어른보다는 어린애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도, 취업을 했을 때에도 그날만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진 않으셨던 것 같다.
묘한 느낌은 생각보다 잘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속 깊이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아버지가 그날 왜 그렇게 기뻐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버지 인생길에 고등학교 교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예전 생활기록부에는 부모 직업과 학력을 적는 란이 있었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일러주신 대로 학력란에 아버지는 고졸, 어머니는 중졸이라고 적어 넣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학력사기(?)를 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거의 다 되어서야 두 분이 그동안 본인들의 학력을 한 단계씩 부풀려 자식들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시고 난 후 서류를 떼러 동주민센터에 갔는데 '초중고 학교생활기록부 발급 가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접수창구에 물어보니 가족들의 오래전 생활기록부도 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호기심에 떼어 본 아버지의 오래된 생활기록부 사본은 아주 짧은 기록들만 남아 있었지만, 이 서류의 주인이 한 때는 꿈 많던 십 대 소년이었음을 증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생활기록부 마지막 진로 란에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공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꿈처럼 어슴푸레하던 사실이 실제 존재했던 사건들임을 명확하게 증명해주는 문자들과 마주하는 것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표정 없는 서류 속에서 나는 친구들과 같이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열여섯 살 나이의 소년을 만난다. 동시에 생활기록부에 잉크가 마른 날부터 약 30여 년 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교복을 보며 울다 웃다 하는,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같이 떠올린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의 아버지 얼굴이 이상하게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아 있던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빠르다. 벚꽃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길가엔 철쭉이 한창이다. 5월을 코앞에 두고 가족들이 같이 둘러앉아 온라인 입학식 영상을 봤다. 올해 학교에 입학하는 친구들은 코로나 세대로 불리는 것이 아닐까. 이 아이들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들 중 하나인 입학식 날의 풍경을 마스크로만 기억하면 어쩌나 하고 혼자 지레 걱정이다. 온라인으로나마 입학식을 치러내고(?) 이제 어엿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지만, 입학식 사진을 찍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물론 찍어준다고 해도 이제는 귀찮다 손사래를 치겠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라다가 어느 순간 십 대가 되고, 교복을 입고, 그런 순간들이 벼락같이 오겠지. 그 새싹처럼 충만한 시간들을 수현이가 좋은 추억들로 잘 품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손주라면 죽고 못살던 할아버지가 비록 입학식엔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늘 하늘에서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실 게다.
수현이도 어느 순간이 되면, 매일 자기 좋아하는 게임 못하게 하는 나쁜 아빠를 조금은 더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슬쩍 가져 본다. 연필 몇 자루 깎아 주며 갖는 바람 치고는 너무 큰 것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