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은 있는 법
수현이가 너무 가벼워 걱정이다.
코로나를 뚫고 초등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늦은 생일 탓인지 또래에 비해 가냘프다. 등굣길에 인사하는 다른 친구들을 힐끗 보니... 우람하다.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 1학년 평균 몸무게를 검색해보니 25kg란다. 중간을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반에서 가장 작으면 어쩌나.
식사시간이면 늘 밥 먹이는 게 일이다. 분명히 내 자식인데 밥 먹는 것을 이렇게 싫어하다니 믿을 수 없다. 앉아서 두 그릇은 뚝딱 비울 수 있는 영혼의 음식, 소울푸드가 아직 없어서 그런 것일까?
반세기 요리 경력을 자랑하는 아버지의 레시피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닭-도리탕'이었다. 매일 심심한 반찬들만 식탁 위에 내놓았던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종종 만들어주곤 했다. ‘닭-도리탕’은 그 정점에 있었다. 요샛말로 하면 '단짠단짠'의 극치였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는 요리에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35년 결혼생활 내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신세였다. 어머니가 다니던 일터는 야간 잔업이 많았고, 아버지는 혼자 밥을 지어먹는 날이 많았다. 중학교 졸업 이후 줄곧 집 밖을 떠돌며 자취 생활을 하던 젊은 날의 이력도 한몫했으리라.
방에 앉아있다 보면, 문틈으로 '닭-도리탕'의 매콤한 냄새가 슬슬 유혹해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싶은 즈음이면 아버지는 '닭-도리탕 다 됐다!'라시며 동생과 나를 식탁 위로 불러 모았다. 국어 문법 시간에 긴 말 짧은 말을 배우긴 하였으나, '닭'도 장음이 적용되었던가? 고민하게 할 만큼 아버지의 짧은 그 한 마디는 독특한 리듬을 띄고 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군침이 돈다.
요즈음은 닭볶음탕이라고 고쳐 부르곤 하는, 그 시절 아버지의 닭도리탕은 사실 탕이라기보다는 조림에 가까웠다. 국물이 많지 않고 꽤나 걸쭉했다. 조금만 더 끓이면 강된장처럼 되어 비벼 먹기 딱 좋았다. 이 요리에 대한 당신의 자부심은 나름 대단해서 '닭-도리탕'에는 반드시 토종닭을 써야 했다. 좋은 재료를 쓰려는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흰 감자를 으깨고 그 위에 빨간 국물을 휘휘 끼얹어 먹는 쪽을 더 좋아했지만.
나중에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새벽같이 인력시장에 나가 하루치 일당을 받으면 아버진 그 돈으로 토종닭을 사 오곤 했다. 자신은 나이 들고 자식들은 나이를 먹으며 서로 데면데면해졌지만, '닭-도리탕 다 됐다!'는 소리 다음엔 식탁 위에 잠시나마 따스하게 온기가 피어났다. 내색은 안 했지만 땀 흘리며 같이 '닭-도리탕'을 먹고 나면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닭다리는 자식 그릇에 넣어주고 남은 국물에 밥 비벼먹던 아버지는 그때 무슨 마음으로 자기 그릇을 비우고 계셨으려나.
'닭-도리탕'은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다.
남은 것은 2020년대의 닭볶음탕뿐이다. 원체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집에서 곧잘 해 먹어도 보지만, 아버지의 맛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엄마표 닭볶음탕은 아예 다른 요리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생전에도 강한 어조로 백종원처럼 모질게 평을 내리곤 했다. "그렇게 국물이 흥건하면 그건 닭-도리탕이 아녀. 국이지."
영양실조까진 아니니 참고 기다려봐야지. 라면도 떡볶이도 순하게 만들어 주면 조금씩 먹기 시작했으니, 언젠가는 닭볶음탕도 같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이것저것 세상 다양한 음식들 경험하다 보면 아이도 언젠가는 자기만의 소울푸드를 찾을 수 있게 되겠지.
아쉬운 건, 아직까지 아들은 아빠가 만들어주는 음식에 대해서는 도무지 매력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아빠가 이때까지 해준 것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진지하게 물어봤더니,
"... 콘플레이크."
차라리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소울푸드라는 용어는 미국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먹던 전통 음식을 통칭하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가 자주 먹는 프라이드치킨도 포함된단다. 치킨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왔던가를 생각하며, 수현이가 콘플레이크 말고 다른 인생 음식을 찾아내길 바라본다. 꼭 아빠가 만든 것이 아니어도 되니, 조금이나마 더 영양 많은 음식에 인연이 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