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라진 노트 한 권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네

by 자민

아이들 짐이 느니 집이 점점 좁아진다. 버려야 산다. 책과 옷가지들을 꺼내 기부 상자에 넣는다. '이 책은 대학 때 정말 좋아했던 건데...', '이 옷은 인턴 할 때 나름 큰 마음먹고 샀던 건데.' 물건들에 얽힌 추억들이 떠올라 정리하는 내내 마음이 쉽잖다.


버리는 일은 어렵다. 순간의 실수로 소중한 것까지 함께 버릴까 두렵다.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라 하지만, 그렇게 쉽게 툭툭 버릴 수 있었으면 정리 컨설턴트 같은 직업이 왜 생겨났겠나.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를 보는데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육아일기’가 나온다. 엄마가 자기를 낳고 오 년간 꼬박 썼다는 일기. 아... 그러고 보니 내게도 비슷한 책이 있었다. 아버지의 두툼한 노트.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어느 순간 사라진 그 노트. 대체 언제 어떻게 떠나버린 것일까. 정신없이 버리다 그만 쓰레기봉투에 함께 넣어버렸던 건 아닐까.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은 될 법한, 꽤 두꺼운 노트였다. 겉표지는 닳아 없어졌지만 안쪽엔 아버지 글씨가 빼곡했다. 그저 글들만 있던 게 아니었다. 초록색, 핑크색, 노란색... 색색의 펜으로 멋을 낸 글귀들이 매 쪽마다 자리 잡고 있었고, 한 귀퉁이에는 코팅한 나뭇잎들이 붙어 있었다. (나뭇잎 위에 시를 쓰는 게 70년대 인스타 감성이었던가.) 뒤로 넘기다 보면 잡지에서 오려 붙인 듯한 배우들 사진들도 있었고, 아버지가 그린 그림들도 나왔다. 네 컷 만화 같은 그림도, 극화체의 군인 그림도 기억이 난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습작 노트.


어릴 적에 볼 때는 보물지도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태어나기 전의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유일한 단서 같았다. 노트 속에는 내가 늘 보아오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파릇한 이십 대 청년의 표정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연서는 늘 키득이며 읽던 클라이맥스 같은 부분이었다. 세상에 ‘J에게..’라니! 돌이켜보면 그 편지는, 그저 러닝셔츠 차림에 소주 마시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양반에게도 모든 걸 불태울 것만 같은 청춘의 순간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명이었다.


노트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혼자 상상하곤 했다. 젊었을 적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온갖 정성을 다한 것만 같은 글과 그림을 남기던 순간의 당신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자식들을 낳고, 마흔을 넘어, 쉰을 넘은 나중에 다시 그 노트를 펴본 적은 있었을까.


사라진 노트를 떠올리며 혼자만 아쉬워한다. 잘 챙기지 못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로 몇 번을 뒤적여봤지만, 찾지 못했다.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책이 되고 말았다. 버리지 않았다면 가끔씩 꺼내어 읽어볼 수 있었을 텐데. 살면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어머니가 쓴 육아일기라던 김하나 작가가 괜히 부러워진다.


아이가 TV가 뚫어져라 '슈퍼윙스'를 보다 고개를 돌려 묻는다.

"아빠, 일본 가본 적 있어? 인도 가본 적 있어? 아참, 나 태어나기 전에 가봤다고 했지?"


"암, 가봤지. 아빠는 (지금도 젊지만) 젊었을 때 장난 아니었어. 안 다녀본 나라가 없어. 뱃살도 하나도 없었어. 지금보다 훠얼씬 멋있었어. 그래서 엄마가 좋다고 따라다녔잖아!"

"... 못 믿겠는데?"


사실 아빠도 말이야, 할머니가 종종 네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타고 자기를 태우러 오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히 상상이 안됐어. 근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할아버지가 남긴 노트가 있었거든? 그 노트 속에서 본 글과 그림을 (그리고 나뭇잎을!) 떠올리면 '라이더 할아버지' 모습도 있을 법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초등학생이 되어서인지 아이는 예전만큼 쉬이 믿지 않는 눈치지만, 그래도 나중에라도 한 가지 정도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도 세상은 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고, 아빠와 엄마도 네가 매일 보던 것과 달리 수줍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제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여전히 믿긴 어렵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