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약 3.31제곱미터의 작은 공간에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바퀴 달린 의자, 옆자리에 앉은 동료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1미터 높이의 사무용 칸막이가 유일한 방어막이 되어주는 장소. 20대의 내가 업무를 보던 사무실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일하는 공간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길이 73.9미터, 높이 18.6미터, 실내폭 5.86미터인 이곳에는 최대 442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출입문은 10개, 회사의 탕비실 같은 공간이 세 군데가 있고, 화장실은 12개, 그리고 업무시간이 길어지면 잠을 잘 수 있는 숙직실도 있다. 유독 작은 창문으로 하늘과 마주하고,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 나의 일터는 상공 4만 피트, 항공기다.
중동항공사의 7년 차 승무원, 나의 사무실 밖 풍경은 단 한 번도 어제와 같은 적이 없다. 수없이 봐온 일출과 일몰은 오늘도 어김없이 새롭다. 내 발아래 인공의 빛들이 만들어낸 은하수는 하늘의 그것만큼이나 찬란하다. 나는 하늘에서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을 사랑한다.
이런 비일상의 풍경 속에 전 세계에서 온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있다. 국적도 성별도 연령도 다른 그들의 여정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렇게 400명의 승객들이 400가지의 사연과 감정을 안은 채 길을 떠나는 순간에 내가 함께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다국적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분명 특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가.
다 팔리고 없는 기내식을 구해오라며 막무가내 고집을 부리는 건 기본, 아무렇지 않게 똥기저귀를 손에 쥐어주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게으른 외국인 동료는 가장 바쁜 때에 자꾸 어디론가 사라진다. 동양인으로서 겪는 은근한 인종차별은 덤.
폼나게 유니폼 차려입고 전 세계를 누비지만, 제출하지 못한 가슴속의 사직서만 수십 장인, 나는 보통의 직장인이다.
그래서 하고 싶다. 늘 멋지고 싶지만, 향수병에 시달리는 외롭고 간헐적으로 찌질한 하늘 위 외노자의 이야기를. 이건 나의 업무보고서이자 하루의 기록이고, 30대의 자취이다.
사막의 끝에서 내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나의 이야기는 하늘에서 시작한다.
*2003년 제작,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View from the top>의 제목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