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대의 비행

by 작중화자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최대 장점은 역시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도의 태양이 내리쬐는 인도양의 섬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에펠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고, 저녁노을이 들어찬 북유럽의 골목을 거니는 일이 몇 시간 비행의 보상처럼 주어진다. 월평균 85시간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근로 시간과 항공권 할인의 직업적 혜택 덕분에 휴일에도 짧은 여행을 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좋든 싫든 Full time traveller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모든 항공사들이 유례없는 경영난에 봉착했고, 수많은 승무원들의 날개가 꺾였다. 함께 비행하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자의로, 또는 타의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국경이 하나 둘 닫히고, 최대 규모의 운송수단인 비행기가 지상에 묶이게 되면서 ‘자유로운 여행’이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나는 팬데믹 초반 6개월 동안 비행을 단 두 번밖에 하지 못 했는데, 오랜만에 간 내 일터의 풍경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좌석의 절반 이상이 비어있고, 그나마 있는 승객들 모두 마스크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기내는 이제 무거운 적막감으로 채워졌다.

마스크와 고글, 가운, 장갑을 착용하고 일하는 작중화자의 모습


변한 일상에서 내가 마주한 건 달라진 여행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인도행 비행을 간 이날은 12월 26일이었다.

탑승하는 승객들에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때 작은 체구의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긴 여정에 너무 피곤하다며 누울 수 있을만한 빈 좌석들이 있는지 물었다. 팬데믹 이후 기내에서의 좌석 이동을 금하고 있었기에 나는 도와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알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부탁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지 그녀는 다른 동료들에게도 같은 요구를 했고, 그때마다 그녀에게 돌아간 대답은 똑같았다. 도와주지 못해 잠시라도 미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왜 이런 시국에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한 몸 편할 궁리만 할까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 도착해서 하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앞에 서 있는 이 중년 여성과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녀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살고 있는데 인도에 있는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가족들과 연말을 보내러 가는 건지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크리스마스가 끼는 바람에 항공권을 예매하기가 어려워 상파울루에서 두바이를 거쳐 인도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다고 했다. 공항에 내려서 또 기차를 타야 한다는 말에, 그제야 유독 지쳐 보이는 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나는 머리 위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진 것만 같았다. 눈물이 차오르는 그녀의 충혈된 눈을 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좌석을 옮기고 싶은 이유를 물어봤더라면, 그래서 사정을 알았더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편의를 봐줄 수 있었을 것이다. 복잡한 심정으로 덩달아 눈이 벌게지며 애도를 표하자 그녀는 고맙다며 웃어 보였다.


"I have to stay strong."


그녀의 이 한 마디가 3일간의 여정동안 얼마나 많이 되뇌어졌을지, 무너질 때마다 어떻게 그녀를 간신이 붙들었을지, 그래서 이 말이 얼마나 그녀에게 간절했을지, 나는 감히 헤아리기를 단념했다.

그 후로도 종종 가족을 잃은 승객들이 타곤 했다. 그때마다 크리스마스 연휴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가족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중년 여성의 피곤에 절은 얼굴이 떠올랐다. 전염병이 바꾼 삶의 단면들은 아프게 다가왔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이제 1년도 더 지나 뉴 노멀(New normal)에도 익숙해지고, 비행편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기까지는 앞으로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쩌다 애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하지만 결국 이 깊은 슬픔 또한 끝이 나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함께 하늘을 건너는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천진한 웃음이 돌아오리라.




*이 글은 2021년에 작성되었습니다. 현재는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상실의 순간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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