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의 삶은 지난하다. 내가 견뎌야 하는 건, 모든 낯선 것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외로움에 지치지 않는 것, 그리움에 상처받지 않는 것,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것.
그렇게 외롭고, 그립고, 두려운 나를 다독이며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나의 타지에서의 삶이다.
내일 아침, 내가 눈을 뜨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몸은 얼마나 지난 후에 발견이 될까? 흉측하게 부패되어 악취를 풍기기 전에 발견되면 좋을 텐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룸메이트가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생존 여부를 확인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해외에 살게 되면서부터 아프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다. 물론, 병원비가 비싼 이유도 있다.
온갖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을 감지하면 바로 클리닉으로 달려간다. (본사 클리닉에서는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의 질은 기대할 수 없다.)
덕분에 20대 때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 중이지만, 그럼에도 잠이 들기 전 종종, 이 밤이 이생에서의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2021년,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두고 나의 망상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기저질환이 없던 사람들도 백신 접종 뒤 사망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부터다.
크루들은 모이기만 하면 부작용에 대해 얘기하기 바빴다. 누구는 안면 마비가 왔다더라, 누구는 눈이 안 보인다더라 하는 ‘카더라’들이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졌다. 애써 다독이던 불안이 ‘말’들을 먹고 자라기 시작했다. 어떤 말들은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신을 맞지 않을 시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회사의 압박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백신을 맞고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으면 신고를 해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모든 말들을 털어내고 담담히 백신을 맞은 다음날, 몸살이 난 것처럼 하루 종일 미열과 근육통, 오한에 시달렸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덜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상비된 해열제도, 나의 생존을 확인해 줄 누군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밥을 챙겨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잠을 자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몸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동안의 걱정들이 마치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기운을 차리고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소식을 전했다. 나 괜찮다고, 백신 별 거 없다고, 조금 허풍을 떨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