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이 먹는 것'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 식구'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같이 먹는 사람에 대한 유대를 매우 높게 여긴다.
사회생활을 하면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가정과 맞먹을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직장인들은 같이 밥을 먹는 것이 부족하여 2차도 3차도 가며 강남과 이태원을 종횡무진한다. 이를 회식이라 부른다.
라며, 후손들은 우리의 회식문화를 역사책에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시작된 판데믹 루틴 속에서 우리는 과연 모일 수 있을까?
모임으로 인한 질병의 확산이 사회적 주홍글씨로 낙인찍히는 일이 반복된다면, 질병 확산의 매개체라는 인식으로 혐오와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 된다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모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실 90년대생과 밀레니얼 세대들이 사회 초년생으로 진출하면서 이미 사회생활의 저층부에서부터 다른 기류는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은 모임과 회식 문화의 종식을 소환했다. 저 멀이 10년 뒤에나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을 현재로 가지고 온 것이다.
사람들은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탄력근무를 통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접촉과 밀집을 최소화하고 있다. 당연히 업무 리듬이 다르거나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같이 밥을 먹는 '식구'라는 개념보다는 독립적인 개체이자 협업을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만을 충실히 하면 되는 것이다.
틈만 나면 모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미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이전의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소주잔을 돌리고 찌게, 탕을 함께 떠먹으며,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는 그들의 문화는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세대의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나도 '비위생적'이고 '비상식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현재 이후의 역사교육을 받는 이들은 낯 뜨겁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근현대사 책을 공부할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21세기의 기점을 만들어낸 코로나 19는 1차 세계대전과도 같이 질병 이전의 세계와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온갖 학설과 이론을 가져다 붙이며 과거의 우리가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우리가 모여서 했던 일들. 우리가 모여서 하는 것의 장단점 등에 대해서 떠들어댈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코로나 이후의 세계관에 대한 타당성과 정당성을 부여할 이유들을 탐색하고 결론으로 치달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번 승자에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 승자가 특정 국가가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고 후대에 연결이 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다음 세대는 "옛날에는 '회식'이라는 문화가 있었대"라는 식의 구분선을 그어놓을 것이고, 이전 세대는 "요즘 것들은 모여 얼굴 보고 밥 먹기를 싫어해서 문제야" 라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미래에는 판데믹의 일상적인 반복을 통해 모임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혐오, 우려와 질타가 시대 문화를 바뀔 것이다.
모임은 가족이나 프라이빗에 한정될 것이고 직장으로의 출근이 사라지며 퇴근 후의 모임은 온라인 상에서의 커뮤니티로, 혹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모임으로, VR/AR로, 혼합현실로, 계급제 사회에서의 대리인이나 아바타로 대체될 것이다.
모임은 반정부, 반제도권, 반권력 세력에 의한 항의와 항거의 표현으로서 제한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광장과 술집, 강당의 용도는 변경되거나 아예 그 자체가 폐쇄~파괴될 것이다.
인간의 사회성은 시대적 분위기와 기술의 결합으로 또 다른 차원으로 변화하며 '사회'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시대성을 반영하며 의미와 사용처에서 바뀔 것이다.
[회식이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법적으로 회식이 폐지된 날. 역사 속의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