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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y 30. 2020

순정마초맛 남편

삼겹살을 먹으며


어제까지의 다이어트기간을 마치고 함 삼겹살 먹던 중, 쌈을 싸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순정마초네"


로메인 상추위에 놓인 삼겹살이 뜬금없는지 몸을 일으켜 나를 멀뚱 쳐다보았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순수하긴 하다. 그 흔한 나이트클럽도 한 번 안가본 순수한 맛의 남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유흥의 경험도 '남성성'을 결정짓는 하나의 요소라고 말하지만, 난 그런 경험 없이도 충분히 남성적이다.


상추를 한 쌈 입에 채워놓고 우적우적 씹으며 생각해보니 난 확실히 '순정마초'가 맞는 것 같다.

손바닥 위에 올라온 다음 상추잎 위에서,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 조차 않고 언제나 아내 걱정만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 나에게 아내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아이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아이 없인 살아도 아내 없이는 못 살 것만 같다.


상추잎 위에 묵은지와 고기를 얹으며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나만큼 남성적이고 러프한 남자도 없다고 말이다.


물론, 한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근육은 오간데 없고 팔뚝은 가늘어졌지만, 아직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크아' 소리를 내며 팔뚝으로 입을 닦는 그런 행태는 남아있다.

푸짐하게 쌓은 쌈을 아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보 , 나 순정마초 맞네. 나만큼 그런 사람이 없네"라고 하며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그럼 '순정마초'로 글 한 편 쓰고 자"라고 하며 바람을 넣었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주 동안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후 보상이라도 받는 것 처럼 배가 찢어지게 삼겹살을 먹어치웠다. 배가 많이 불렀고, 오랜만에 마신 맥주도 맛이 좋았다.

부담없이 맞이하는 저녁시간에 기분이 좋았다. 물론 여기저기 튄 돼지기름을 닦고, 설거지와 남은 식재료 정리 등 할 일은 많았지만, 만족스러운 저녁과 나름 듣기 좋은 '순정마초'라는 별칭을 받고 나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목욕을 하고, 아이들 이를 닦이고 난 후, 부른 배 때문인지, 두 캔의 맥주 때문인지 아이들과 함께 잠이 들어버렸다.


'순정남'스럽게 아내를 위해서 집을 치우지도, 아내와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으며, '마초남'스럽게 술기운을 이기고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터프하게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물론 브런치에 글도 쓰지 못했다.


대신, 고깟 맥주 두캔에 뻗어 아이들과 잠에 들기 바빴을 뿐이다.


배부르고 기분 좋다며 연신 '청산'을 노래부르던 한 시간 전의 모습은, 순수하고 남성적이라며 '순정마초'라고 자칭하던 모습은 없었다.

그저 행복한 돼지가 되어 저기 목표상 고지가 아닌 침대 한 켠을 점령하고 잠이들었을 뿐이다.




나는 아내가 말한 것 처럼 순정마초 남편은 아니고, 순정마초'맛' 혹은 순정마초'향' 남편정도가 되는 것 같다. 딸기맛 사탕이 딸기가 아닌것 처럼 말이다.


아. 순정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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