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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Sep 08. 2020

꿈꾸게 하는 여자

당신에 대한 이야기야


안녕, 여보. 새벽 네시쯤이야.

언제나처럼, 피로를 이불 삼아 잘 자고 있지?

오늘은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해. 나에게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봤어


당신은 나에게 밥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빨래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발톱 깎아주는 사람도 아니더라고. 당신이 나에게 의미하는 가장 큰 바는 제목에서도 펼쳐놨지만, [꿈꾸게 하는 여자]라는 것이었어.


사람들에게 바다를 항해하게 하려면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는 말이 있잖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바다를 항해하게 하려면 배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항해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꿈꾸게 하는 것만큼 강력한 리딩은 없다는 이야기인데, 당신이 나에게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더라고.

배를 만들어 바다를 항해하게 하는 건 바다에 대한 동경

당신은 내가 원하는 차를 사게 하지도, 매일 밤 치킨을 시켜주지도,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발톱을 깎아주지도 않지만. 확실한 건,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하고 내가 무언가 추구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소년 같은 나는 종종 여보에게 말하는 것처럼, "여보 난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배우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되고 싶은 것 말이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


보통은 어른이 되면서 현실을 마주하고 사람들은 점점 꿈을 잃는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당신을 만나고서 그 정 반대가 되었지 뭐야? 그렇다고 여보가 나에게 현실성을 주지 시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여보가 나에게 하는 가장 많은 질타는 "현실성이 없다. 현실성을 가져라"라는 말인데.


당신 옆에 있으면 언젠가 먼 훗날에 기억 속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몸은 부서지고 매일같이 지쳐있을 수는 있겠지만 ㅋㅋ 그래도 여보가 내 건강이며 식단이며 챙겨가며, 옆구리 살살 간지러 가며 바다에 닿을 수 있겠지?


요래 다정하게 늙어가야지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 나가다 보면. 언젠간 정말 이야기할 거리 많은 할머니가 된 당신과, 그 옆에서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이놈의 할망구가 글쎄 쿠욱-쿡 찔러 가지고 여기까지 왔지 뭐야-?"라고 말을 끝내는 그런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지.


남들 앞에서는 가슴 펴고 늠름한 척 다하는 무관이지만, 당신이라는 여자 앞에서 나는 한 마리 토끼에 불과해. 그러니 너무 나무라지 말고, "네 털이 참 곱구나", "네 걸음이 참 빠르구나", "네 꾀가 영묘하구나" 하면서 잘 추슬러 줘.

호랑이띠 아내, 토끼띠 남편

언젠가 바다에 닿을 그 날에는, 또다시 산으로든 우주로든 땅속으로든 이끌어 주시고. 그때 가서 눈 앞에 쌓인 첩첩산중의 문제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매일 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 대토론회 반복하면서 슬기로운 해결책을 만들어 보자.


계속 잘 자. 아직 깊은 밤이야.

바람소리 시원하고 귀뚜라미 소리 간지러운 가을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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