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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y 16. 2020

부부의 세계

부부의 세계에는 언제나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되고 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저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부부의 세계다.



화사한 원피스가 바람에 살랑이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 샘솟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외투를 본 순간 또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치워주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내가 집에 돌아와 옷걸이에 거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을 재우며 피곤에 절어 쓰러져 잠든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애처롭기 그지없지만, 늘 10%를 왔다 갔다 하는 아내의 핸드폰 배터리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 생긴다. 내가 틈만 나면 충전기를 꽂아두지만 그와 같은 정도로 충전기에서 빼 뭘 그리도 보는지 모르겠다. 뭐라 한 마디 할라치면 꼭 아이들 옷이나 식재료를 주문하고 있어 더 따지고 들 수도 없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때는 너무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맛있는 음식을 해놓고 나서야 차가운 음식이나 반찬을 꺼내 놓느라 애써 만든 음식이 다 식도록 기다려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반쯤 식어버린 최고의 진미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먹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 아내는 직접 해보란다. 실제로 직접 해보면 쉽지 않긴 하다.


"오늘은 애들 재우고 놀다가 자자"라고 신나게 계획을 세우지만, 이제 아이들 자장가 한 곡 불러줬는데 아내만 잠들어버리는 상황이 당황스럽다. 무슨 영화를 볼지, 어떤 대화를 할지에 대한 계획은 무산이다. 그래 놓고 다음날 되면 "외롭다"라며 나를 압박한다. 분명 먼저 잠들어 놓고. 미인이라 잠꾸러기인가.


쫩쫩거리며 먹는다고 비난하고 훈계할 때는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나를 귀여워해 주고 어디 가서 욕먹지 않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아내 입장에선 아들 셋 키우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쩔 때는 내가 큰딸과 아들 둘을 키우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는 건 알려나 모르려나.


스트레스 받은 민구 feat. 이케아쇼룸


그렇게 열을 올리며 언쟁하고 눈물을 쏙 빼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쿨하게 용서해주고 이해해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왜 열을 올렸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해해주지만 실은 하나하나 한 줄 한 줄 다 기억하고 있다가 언제든 비슷한 상황에서 로딩되어 나를 옥죄어온다. 대단한 기억력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저렇게 쿨하게 넘어가지 싶다.


일주일에 한 번은 치킨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졌지만, 내가 기운 없이 축 쳐져 들어오면 "치킨 먹을래?"라며 에너지를 채워주는 아내가 나와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이제 아내도 나를 다루는 법을 잘 터득한 것 같다. 쓰러져 있다가도 치킨 소리만 나오면 번떡 일어나 집안일을 시작하니 말이다.


같은 화장실 청소를 하더라도 내가 분명 다 치우고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도대체 뭘 치웠냐며 한참을 치우다 나온다. 나는 분명 구석구석 솔질하고 잡다한 물건들을 다 정리하고 나왔는데, 아내는 물때를 지우고 거울과 수도꼭지를 닦아낸다. 내 눈엔 얼룩이 안 보이던데, 우리 부부는 화장실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정확히 다른 최고의 조합이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치우는 아내와 빠른 속도로 대강대강 치우는 나는 정말 최강의 콤비다. 10분이면 집 전체를 다 치우는 나는 왜 항상 이 쉬운 걸 못하나 불만이지만, 아내는 하나하나 정갈하고 정성껏 일을 처리한다. 사실 내가 10분 만에 집을 치우면 여기저기 분류하고 서랍 안에 때려 넣어 놓는 정도 수준이기 때문에 겉으로만 정리된 상태인데, 아내의 손길이 닿아야 완성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목표까지 직선으로 내달리는 나와 주변을 보고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아내는 없어서는 안 될 상호 보완책이다. 나는 매번 태클 거는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하지만, 사실 아내 말을 듣고 살았으니 이 정도지 안 그랬으면 좌충우돌 실패와 실수의 연속에서 인생이 더 엉망진창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대로 아내 말만 들었다면 아직도 저 뒤에서 뭉그적 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다행이다 정말.


부부의 세계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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