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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y 13. 2020

친구 없는 아내

꽃 다운 시절,


원래도 큰 키에 킬힐을 신고 역삼으로 광화문으로 출근하던 아내는 쉽게 말 붙일 수 없는 차가움과 알고 보면 깊이를 모를 따듯함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와 동료들이 대단히 많지는 않았지만, 스케줄표는 늘 충분히 꽉 들어차 있었다. 적적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내의 삶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아내는 결혼 후 아들 둘을 연년생을 낳았다. 7년 간 이사만 4번에, UAE에서, 친정에서 지냈던 기간까지 합하면 8번의 거쳐를 옮겼다. 늘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다.


그렇게 흐른 시간 속에서 아내의 달력은 공휴일과 남편의 당직서는 날, 어린이집 방학 정도로만 표시가 되었고 어제와 내일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같은 일상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야근을 하거나 당직이라도 서는 날에는 꼬박 하루, 이틀간 아이들하고만 대화를 하며 지냈고,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않으면서 거의 모든 외부활동이 끊겼다.


편의점도 한참을 걸어 나가는 군인 관사다. 인도 없는 2차선 도로에서 수많은 트럭들을 피해 한 시간을 걷지 않으면 병원도 마트도 카페도 없는 구석지다. 아내는 그런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쌓아 나가고 있다.




늦게 집에 들어간 어제저녁.

아내는 이제 친구가 없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얼마 전 있었던 부부싸움까지 오버랩되며 미안한 마음이 관자놀이까지 차올랐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운 짓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고 산 것 같아 부끄러웠다.


위로와 조언의 말을 건넸지만 무게추 마냥 호수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아버렸다.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관사를 시내로 옮겨서 15년 간 이사를 가지 않고 지낼 수 도 없는 노릇이고, 아내의 학창 시절 친구들을 소환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가 평생에 가장 좋은 친구이자 기댈 수 있는 고목이 되어줘야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아내에게 40도의 말을 건네고 85도의 물로 차를 내려주고 100도의 사랑을 주어야겠다.


아내에게 친구가 여기 있다고 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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