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 체육대회인 이번 주, 어제까지 진행된 모든 경기에서 우리 대대는 한 종목도 빠짐없이 1차전 탈락을 맛보았다. (쓰고 텁텁한 맛)
오늘부터 꼬박 삼일 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체육대회 기간이니 우리끼리 공차고 탁구 치고 별 짓을 다해도, 3일이라는 시간은 아무런 경기도 없이 우리끼리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때문에, ㅇㅇ중대장은 DVD를 빌려와 대대원들과 함께 영화를 시청하려고 했고, '존 윅'이라는 영화 제목을 보고 드리자 대대장님께서는 '좋은 위기'로 알아들으셨다.
다들 한 바탕 웃고 해프닝으로 넘어갔으나, 나는 그 순간 [좋은 위기]라는 서로 안 어울리는 단어가 조합된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맞아, 좋은 위기가 있지" 속으로 되뇌었다.
평범한 세상에선 평범한 성과 이상으로 얻기 어렵지만, 세상의 모든 변화와 성공은 위기로부터 시작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의 도처에 지뢰처럼 깔려있는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 사람들이 "위기의식"이 없다면 그 위기에 돈좌될 것이고, " 위기의식"이 있다면 위기를 피해 갈 것이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위기의식이 아니라 "기회 의식"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늘 위기를 기다리지 않을까? 준비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지는 않을까?
늘 무언가(위기)에 쫓기듯 사는 초식동물처럼 이 아니라, 늘 무언가(기회)를 사냥하려고 납작 엎드려 조용히 움직이는 포식자들처럼 말이다.
사실, [좋은 위기]라는 것은 라벨링 하기 나름일 것이다. 종류와 정도가 다른 위기들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위기]라고 이름 붙이고, 어떤 사람은 [기회]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 보는 사람이 위기의 파도를 피하거나 넘어가기 바쁘다면, 위기를 기회를 보는 사람은 위기 위에 널빤이라도 띄워놓고 파도를 타며 더 먼 곳으로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
[좋은 기회]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에 따라 '그렇게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있는 가변적인 요소인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마주하고 있거나, 곧 마주하게 될 수많은 어떤 문젯거리들이 나에게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답은 쉽게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로 근 10년 중 최대 낙폭의 주식시장 위기가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패닉 셀 하기 바빴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적절한 시기를 가늠하며 계획적으로 분할 매수했다.
1400 언저리까지 내려갔던 코스피는 이제 다시 2150을 넘어, 언제 그랬다는 냥 자연스러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종목마다 다르겠지만) 저점에서 잡았다면 50%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을 수도, (종목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이익을 얻었을 수도 있다.
주식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판데믹' 상황을 위기로 보고 각종 위기대응 시스템들이 작동하고 있지만, 그 보다는 [기회 포착 대응반]을 꾸려, 다음 50년, 100년을 주도할 산업과 국가가 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