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그리고, 예쁜 손가락

안 아픈 손가락

by 아빠 민구


자던 첫째가 운다.


자고 있던 둘째가 너무 예뻤던 아내가 둘째를 안고 물고 귀여워하니 얕게 자던 첫째가 그 소리를 듣고 깨서, 운다.


사랑을 뺏겼다는 생각은 둘째가 태어나서부터 계속 들었을 것이다. 연년생 형제이기 때문에 첫째가 독점한 사랑은 평생에 일 년뿐이었다. 그리고 독차지할 수 없는 사랑은 첫째에게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가졌던 걸 빼았겼으니까.


우는 첫째에게, 아내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준이, 왜 울어"라고 했다. 방금 전 둘째를 이뻐하며 내던 목소리와는 많이 다른 톤이다.


첫째는 엄마가 싫다며 어두운 거실로 나가 더 서럽게 울었다. 내가 안아주겠다고, 아빠랑 자자고 데려와 재우지만 첫째는 잠들지 못하고 계속 훌쩍인다.


아내가 안아주면 쉽게 끝날 일이다. 둘째는 곤히 자니, 둘째는 내가 안아 재우면 되고 말이다. 쉬운 일이다.


아내는 그게 싫다고 한다. 갑자기 울고 삐지고 하는 첫째가 이해 안 된다고 한다. 이해도 안 될뿐더러 첫째 신생아 때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첫째 울음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마음 깊이 남아있다. 첫째가 울면 미간이 구겨지고, 둘째가 울면 그마저도 귀여운 그런 상황인 것이다.



숨을 깊이 쉬고 나서,

아내가 마음을 다시 잡고 첫째를 부른다.

"준이 이리 와, 엄마랑 자자. 엄마는 준이 사랑해. 왜 이렇게 속상했어."

아이는 이내 아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둘째 녀석이 깼지만, "아빠한테 와, 아빠랑 자자"라는 말에 잠시 칭얼거리더니 내 팔베개에 바로 잠들어버렸다.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손가락이 손에 붙어있는데 어떻게 안 아플 수 있겠는가. 모두 다 소중한 내 자식이고 아플까, 속상할까, 더울까, 배고플까 늘 걱정일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이쁜 손가락은 아닌가 보다. 게 중에 더 이쁜 손가락, 반지를 끼우고 싶은 손가락이 분명 존재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궁합이 있어서 더 잘 통하고 더 잘 맞는, 그런 관계가 있나 보다. 확실히.

아내에게 첫째는 아프지만 조금 덜 예쁜 손가락, 둘째는 아프고 예뻐서 애지중지 하는 손가락이다.


그래서 나는 첫째가 늘 안쓰럽고 애잔하다. 성격도 나와 비슷하고, 그 녀석이 왜 삐지는지도 알겠다. 왜 우는지, 어떻게 하면 기분이 풀릴지도 알겠다. 그래서 내가 늘 첫째를 안는다.


첫째가 서운하지 말라고 되려 둘째에게 모질게 하거나 무관심할 때도 많다. 의도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가 이쁜 건 사실이다. 어쩜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진지 [매일] 알겠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에겐 첫째가 더 소중하고 애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내는 첫째에게 공감한다. 아내도 첫째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빼앗겨본, 혹은 나눠가져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둘째였다. 둘째라서 사랑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못 받고 자란 걸 보니, 분명 내 누나는 서러웠고 결핍을 느꼈을게 뻔하다.


이게 단순히 그 부모가 그 자식과 맞냐 덜 맞냐의 문제도 있겠지만, 첫째냐 둘째냐의 문제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성격이 다른 이 두 형제가 순서를 바꿔서 나왔다면 어땠을까?"라는 실현 불가능한 생각도 해 보았다.

우리 이쁜 준돌이들

세상에 안 아픈 손가락은 없겠지만, 더 예쁜 손가락이 있다는 게 우습기도 슬프기도 한 새벽이다.


자식을 키운지 5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뭐가 맞는 건지.

그리고 예쁜 손가락이 예쁘다고 느끼거나, 다른 손가락이 예쁘지 않다고 느끼지 않게 해야 할 텐데.

아직은 서툰 5년 차 부모인가 보다.


씁쓸한 고민을 되씹다 보니 5시가 다 되어간다.

아이의 볼을 한 번 쓰다듬고, 아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답을 찾지 못한 채 잠을 청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