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초조(焦燥)

대위-소령 진급발표 몇 시간 전

by 아빠 민구


사실, '초조(焦燥)'라는 의미 심장한 제목을 잡아놓고 "내일이면 대위-소령 진급 발표가 있는 날이다"라는 말로 시작을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어젯밤에는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번아웃되어버려서 아이들과 함께 22시에 잠들어 버렸다.ㅎ


생각보다 초조하지 않은 내 모습에 [초조]를 주제로 생각이 흘러왔다.


오늘 15시면 진급에 대한 결과가 발표된다. 소위 1년, 중위 2년, 대위 7년의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의 시간을 얼마나 실수 없이 잘 쌓았는지 평가받는 자리이다. 10년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니 다소 엄숙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패는 까 봐야 알겠지만, 분명 나도 10년 내내 '실수'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급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초조]함은 느낄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후배 전우들은 이번 주 내 토록 전화를 주었다. 요약하자면 "좋은 결과 있을 거야"라며 [초조해하고 있을 나]를 안심시켜주고 격려하려는 말들을 전해주었다.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다면, 부대에서도 이 그룹, 저 그룹에서 부단하게도 술을 마셨을 것이다. [초조주]라는 이름으로 만취와 해장을 반복하며 보냈을 시간이었다.


이 시기의 [나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손톱이라도 물어뜯고, 다리라도 떨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며, 긴장감을 술로 이기려는 듯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나의 자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 모습은 아니었다.


어제도, "식사라도 하자"라는 대대장님의 호의를 정중히 사양하고 평소와 같이 지내는 것이 나름대로 [초조]에 대처하는 나다운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와 같이 퇴근해서, 평소와 같이 아이들과 산책하고, 평소와 같이 저녁을 먹고,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잠들었다.


수능을 볼 때에도, 재수를 할 때에도 그랬다.

[초조]해야 마땅하겠지만, 시험 전 날에도 평소와 똑같이 정해진 패턴대로 공부하고 다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저녁 9시에 공부를 접었었다. 남들보다 일 년 더 공부한 만큼, 그리고 그 일 년을 성실하게 채운만큼 시험 보는 것은 [초조]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주변의 평가'로도, '10년간 받은 표창장의 수'로도, 심지어는 '진급의 결과'로부터로 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나의 시간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미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지난 10년에 대해서 그렇게 스스로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렸다. 때문에, "너는 지금 초조해야 해. 초조하다~ 초조하다~"라고 하는 것 같은 주변의 목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초조]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태도가 '전장에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군인은 늘 전쟁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지내야 한다. 전장에서 부하들의 목숨과 나라의 존망을 책임지고 있는 군인이라면 고작 '진급'에 초조해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 같은 '군인'은, 결과에 상관없이 맡은 일을 하면 된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결과를 떠나 대위-소령 진급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동기와 선배들의 군에서 보낸 10년 이상의 시간들에 감사와 존경을 느낀다. 함께 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종류의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대로 엮여있는 우리가 어느 시대나 있었던 국가의 위기에 늘 곤두서서 국가방위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왔음에 감사하고, 유사시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자. 그러면 다시, 일상으로.


잠시 돌아보는 10년 전, 장교로 군생활 시작하던 날 '임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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