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프리덤]이라는 어플을 알게 되었다. 이 어플은 자신이 설정한 시간만큼 스마트폰으로부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어플인 것이다.
어플 : 프리덤
이 어플을 보며 '단절될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혁명을 외친 뒤, 자유는 지구를 돌고 돌아 우리나라의 학생들에게 까지 이어졌고, 많은 피를 값으로 치르고 난 뒤-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살아가면서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에 대한 의식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어 왔다.
코로나로 판도가 바뀌었다.
'판의 법도가 바뀌었'라고 풀어서 생각해보면 더 실감이 된다. 예를 들면 부루마블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거나, 세계 주요 도시를 사면 파산한다든가, 출발지점을 지날 때 세금을 징수한다든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는 판의 법도가 바뀜으로 인해서 우리는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
종교시설이나 클럽 등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려면 QR코드를 발급받아야 한다든가, 접촉자나 확진자가 되면 사적 동선들이 공개되는 식이다. 중국에서는 모든 공간에 카메라가 설치되고 있고 13억 인구의 안면인식까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늘 우리의 감시자이자 블랙박스, 추적기가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다. 생각 없이 사용하는 안드로이드 폰의 '타임라인' 기능이라든가, 어플에 따라 설치 시 강요되는 과도한 기능의 허용들, 통화 및 메시지 기록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파악하고 빅데이터를 축적한다.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알고리즘]이다. 그 알고리즘과 사물, AI가 [초연결]되어 지금은 관찰을, 얼마 뒤에는 감시를, 다시 얼마 뒤에는 통제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어렵게 얻은 자유를 그렇게 끓이는 물속에 개구리처럼 천-천히 빼앗기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하던 장 자크 루소의 말은 어쩌면 '국가 이전의 상태' 이상의 어떤 상태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에덴동산으로 말이다.
역사 발전의 필연성이 매번 작동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즉, 다시 태초로 돌아가도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을 테고, 자손들이 번성해 각 국가와 나아가 제국을 건설할 것이고, 철도와 전기,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개발될 것이고, 역병이 창궐해 다시 자유를 빼앗기는 프로세스가 반복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이번에도 투쟁하고 천부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를 되찾아와야 하는가. 누구로부터 되돌려 받는가.
이제 왕족과 귀족은 정부와 기업이 되었다. 판의 법도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언듯 보기에는 정부와 기업에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든, 우리가 나서서 쟁취하지 않으면 이내 당연한 귀속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릴 자유'를 주장하며 마스크 착용과 락다운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이지 않을까. 자유주의 국가의 대장격인 미국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생각과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방법은 더 다듬어져야겠으나, 우리도 자유의 박탈을 가만히 앉아서 빼앗기면 안 된다. 우리도 우리의 자유를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의지에 의해서 단절될 수 있어야 하고, 또 자유의지에 의해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freedom is not free) 문구를 곱씹으며, 이번에도 공짜가 아닌 자유에 값을 치를 준비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