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못하는 군인

군인 시리즈 2편

by 아빠 민구

군인 시리즈

1편 : 아랍어 하는 군인

2편 : 축구 못하는 군인

3편 :

4편 :

5편 :



"아 무슨 축구가 그렇게 중요해"


그렇다. 축구는 중요했다.

정말 중요했고, 특히나 지휘관이 축구를 좋아하는 경우에는 정말 정말 중요했다.


전쟁 없는 군대에서, 군인들이 목숨 거는 몇 가지 중 하나는 단연 축구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하지 않았던 내가, 생도 시절 축구 수업 좀 듣고 주말에 동기들과 풋살 몇 게임 찼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갭이 아니었다.


잘하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기웃거리면서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할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내 실력은 처참했다. 축구라는 게 사실 계급이 올라가면 잘해지는데, 패스도 더 잘 오고 고참 앞에 수비수가 힘 없이 넘어져버리는 경우도 많고 하다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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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말하면 육군 소위에게 얌전히 패스를 해주거나 마주한 상황에서 일부러 실수를 해주는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다. 중위라고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부족할 때 같이 나가 체력검정 본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니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손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내 머리랑 연결되어있는 것 같지 않은 다리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특히 축구로 그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고 평판이 만들어지는 경우에 그랬다. 난 그냥. 개발이었다.


하지만, 그 개발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 계급이 올라가면서 좀 나아졌다. 2차 중대장을 할 때 즈음되어서는 중대원 중에 축구 잘하는 10명을 뽑고 내가 원톱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배려를 받았다.(고맙다) 하지만 그 마저도 똥볼을 몇 번 차고 나면 민망함에 사로잡혀 스스로 미드필더로 내려왔다가 수비로 내려왔다가 교체해서 벤치로 나가게 된다.


축구란 그런 것이다. 나를 쪼꼬미 잔챙이로 만드는 것.


체육대회가 있을 때면 단골 메뉴가 날아든다. 나는 씨름과 줄다리기 담당이다.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 최적화된 운동인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씨름을 져본 적이 없다.(오호) 줄다리기도 매번, 매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축적되어 성과가 나쁘지 않다.


축구 못하는 내가 어떤 기운이라도 몰고 다니는지, 내 부하들은 날 닮아서 축구를 못했었다. 천추의 한이 될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개발 새발 소발 소대장들이 들어오고 또 들어왔다.


그렇게 2차 중대장을 하던 어느 날, 동반 입대한 두 명의 이등병이 초도 면담에서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중대에서 그래도 공 좀 찬다는 녀석들이 체력단련 시간에 데리고 가서 공을 찼는데, 이건 본 적이 없는 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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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대는 그 둘을 앞세우고 연대 내 체육대회를 일 년 넘게 싹쓸이 했다. 심지어는 내가 최전방 공격수가 되어도 승리했고, 이상하게 내 발끝에서 골도 이따금씩 나왔다. 나는 내가 축구를 잘하게 된 줄 알았다.


축구란 그런 것이다. 쪼꼬미 잔챙이 같은 나를 한 순간에 의기양양하게 만드는 것.


그 둘의 영향으로 나는 축구를 종종 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또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둘을 총애하는 나를 보며, 나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았음에도 인정받았던 동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다. 축구 그게 뭐라고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둘은 동반으로 입대해서 동반으로 전역했다. 그리고 개발, 새발, 소발과 내 발이 남아서 축구 최전선을 담당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축구 잔챙이 쪼꼬미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축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어느새. 그렇게 원래대로 [축구 못하는 군인]이 되어있었다.


동기 중에 공부를 잘하는 놈, 사교성이 좋은 놈, 노래를 잘하는 놈, 얼굴이 잘생긴 놈, 집에 돈이 많은 놈 등등 별별 친구들이 다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축구 잘하는 놈]이 가장 부러울 때가 있다.


쳇, 축구 그까짓 게 뭐라고.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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