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출신 이야기를 '먼저'꺼내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군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출신 이야기가 나오고, 정도는 다르지만 출신에 따른 구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구분은 그 장교의 타입에서 나오는데, 출신별로 묻어 나오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나 느낌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명시적으로 '한 대대에 육사 출신 소대장 0명, 삼사 출신 소대장 0명' 이라든가, '대대장이 학군 출신일 때 정작과장은 학사출신으로 보직'이라든가, '사단 내 특정 출신의 비율을 00% 이하로 유지'라든가, '장군 인사 간 반드시 출신 별 2명 이상을 선발하라'라든가 하는 것은 없다.(혹은 모른다)
결과적으로 부대를 돌고 돌면서 인원 구성을 보면 어느 정도 출신별 안배가 있는 것도 같다. 기본적으로는 절대적인 숫자가 많은 학군 출신 장교들이 많고 그다음으로 학사나 삼사 출신, 그리고 가장 적은 육사 출신으로 일정 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서, 한 번은 부대 내 장교 중에 1/4이 육사였던 적이 있었다(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대대원 중에 나 혼자 육사 출신이었던 적도 있었다.
쨌든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 하면, 그 모든 경우에서 미리 나에 대해 확인하지 않은 이상은 내가 '육사 출신'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출신 별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전형적인 육사 출신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것도 아니지만, 육사 출신의 이미지는 대체로 [빡세고] [체력 좋고] [스마트하고] [원칙주의자]로 비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 [체력] 말고는 없었다.
그러니, 한- 참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다 출신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어, 너 육사였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매우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곤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학군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 기분이 나쁘고 자시고 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이 말을 굉장한 칭찬으로 듣는다. 출신으로 규정지어지는 성향에서 육사 출신의 단점 중에 하나는 [유연성] [융통성] [스마트함] [자유로움] [창의성] 같은 것들의 부재인데, 이런 것들은 대체로 학군 출신 장교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학군인 줄 알았다"는 말에서 '내가 잘하고 있군'이라는 생각을 한다. 괜히 육사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잘난 척할 것도 없고, 실제로 잘난것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소위-중위 때 다른 장교들에 비해 군사지식이 조금 더 많다는 것 정도뿐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금세 무의미해져 버린다.
그렇게 나는 육사 출신이면서 학군 같다는 평가를 받는 군인으로 10년째 지내고 있다. 혹시 육사 동문에서 나를 봤을 때 안 좋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성향은 출신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나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니까. ㅎ
나를 다시 육사 출신처럼 고쳐서 쓰지 말고, 내가 적소에서 적시적으로 쓰일 수 있게 노력하는 수 밖에는 없다.
육사에도 주류가 있고 나 같은 지류도 있고 하는 법이니까. 다른 출신에도 주류와 지류는 다 있겠지만, 결국에는 바다에서 다 만나지 않겠나 싶다.
나라 지키는데 출신이 있을 수 없다. 출신보다 중요한 것은 국방의 의무와 부여받은 임무이니까. 우리는 모두 국방이라는 바다에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