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역사 속에서 사냥을 해왔다. 그것이 먹고살기 위함이었을 때도 있었고, 야생 동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냥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사냥에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데, 근력이나 순발력, 지구력, 집중력뿐만 아니라 사냥감과 지형지물에 대한 배경지식과 약간의 전략도 필요하다.
이제는 실제로 사냥을 할 기회도, 필요도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사냥했던 시대의 기억을 구전으로, 유전으로 이어받았다. 무엇을 잡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있다는 증거로, 4차 산업시대가 도래한 지금까지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하나의 놀이로서 '사냥'이 아직 유효한 정도로 남아있다. 작은 동물이나 새, 곤충을 잡는 것도 일종의 사냥(혹은 사냥 연습)으로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지적, 신체적 능력을 길러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사냥이라는 것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놀이이고 여러 가지 능력을 길러주는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산속의 사냥꾼들
산으로 가는 오솔길은 긴장감이 넘치는 곳이다. 산으로 오르는 모든 길목에서 수많은 나무와 곤충, 새와 동물들을 마주친다. 울퉁불퉁하고 굽이진 산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긴장은 이어진다.
오감을 총동원해 마주친 각종 동물과 곤충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사냥한다. 바위 사이 구멍 속에 어떤 곤충이 있을지, 나무에 붙은 멧돼지 털을 보며 멧돼지가 어디로 지나갔는지,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물이 어디로 흘러 어디에 모이는지, 어떤 동물들이 물에 살고, 물가에 모이는지를 알 수 있다.
계속되는 경사지에 다리는 아프고 나뭇가지에 팔다리가 긁히기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만, 이런 약간의 위험성은 아이들을 긴장시키고 집중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그런 환경 속에서 계속해서 사냥감들을 추적한다.
들판의 사냥꾼들
아이들은 들에서 달린다. 누가 더 빠른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누가 일등인지 꼭 판가름이 나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단순한 승부에 목숨을 걸며 달리고 또 달린다.
저렇게 달리면 사바나 들판에서 달아다는 얼룩말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동네에서 마주하는 개구리, 꿩, 까치, 다람쥐를 만나거든 살금살금 접근한 후 지금까지 연습한 것 같이 온 힘을 다해 '와다다다' 뛰어간다. 꼭 잡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뒷모습에 묻어난다.
들판에 있는 메뚜기나 잠자리를 잡을 때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움직이며 사냥을 한다. 마치 맹수가 먹이에 접근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대상은 잠자리일지언정, 태도만큼은 사냥꾼이 맞다.
냇가의 사냥꾼들
물이 있으면 다양한 생명이 있고, 아이들에겐 다양한 사냥감이 된다. 물고기, 개구리, 올챙이, 다슬기, 물벌레, 풀벌레, 가재, 뱀 할 것 없다.
물에서 느끼는 또 다른 생명력과 긴장감은 아이들을 더 동물적으로 만든다. 각 생물의 특성에 맞게 조용히 접근하거나 빠르게 접근하거나 소란을 피우며 한쪽으로 몰거나 아빠에게 부탁한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물고기 잡고, 새우 잡고, 고둥 잡고, 미꾸라지 잡고, 물잠자리 잡고, 올챙이 잡고, 잡고 잡고 또 잡아도 계속 잡는다.
쓸모가 있는 짓인가
사실,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신봉하며 아이들에게 선사했던 조기교육들이 과연 앞으로의 세상에서 유효할까?
오히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지금까지 해왔던 그런 종류의 교육들은 아이들을 하나의 부품으로써 역할을 하는 어른으로 길러낼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생각은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겐 흙바닥과 변화하는 하늘과 투박하고 싱그러운 수목들과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들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자연에서의 뛰어놀면서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힌다. 체력도 그리고 용기도 기르고 자연 원리도 이해한다. 다양한 구조와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한다.
비록 소나 꿩을 잡아서 먹는 것은 아니지만, 메뚜기를 잡고 올챙이를 사냥하면서 자연과 이치에 대해서 충분히 배운다. 교과서 밖으로, 집 밖으로, 텔레비전 밖으로 나왔을 때의 자유함과 행복은 덤이다.
이제 다시 주목받는 자연 속 교육
지금까지 사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모든 행동들이 사냥 속에 포함되어있다.
나무 숲 사이로 걷고, 바위틈바구니로 기어오르고, 물소리와 새소리를 따라간다. 때론 폭발적인 순발력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때론 숨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기도 한다.
오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자연의 소리, 향기, 모양, 맛, 질감에 집중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사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오감과 집중력은 올라가며, 교과서처럼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사냥하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 AI와 기계에 대체되지 않은 능력을 기를 수 있고, 미래를 펼쳐나갈 그 밑바탕을 그려나갈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적당한 놀이거리를 찾지 못하고 지내고 있다. 자칫, 부모들은 코로나 블루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아이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한 교육의 질이 특별히 높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를 통한 교육의 몰입도와 효과는 높기 어렵다.
이런 것들을 한 번에 타파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써, 아이들과 자연으로 나가 '사냥'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다시 한번 풀어서 설명하면, 사냥이라고 말했지만 자연 속에서의 모든 활동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해야 할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야 취미가 지도 보는 것이고, 특기는 자연에서 노는 것이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자연에서 무언가 잡고, 관찰하고, 만져보는 것이 일상이니 말이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공유해보려고 한다. 교육학 적으로, 정확하게 어떤 활동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자연 속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등등의 정보들을 요약해보려고 한다.
자연 속에서의 활동과 독서, 철학적 사고, 음악과 미술, 다양한 경험이 복합적으로 다 필요하겠지만. 우선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나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자료들을 만들고 싶다.
지체는 없다. 오늘부터 시작한다.
각 계절과 절기별로, 지역과 지형별로 즐기고 배울 거리를 정리해보겠다. 재밌겠다.
음, 어린이 사냥 교본? 숲 놀이 한 권으로 끝? 아빠 손 잡고 자연으로 나가라? 근교에서 즐길 수 있는 자연놀이?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