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애를 업고 뛰어라

왕년 생각에 눈물이 찔끔

by 아빠 민구



출근하기 전, 두려운 마음을 짓누르고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올랐다.

손가락을 천천히 벌려 발 끝으로 시선을 옮기니, 전자식 인바디 체중계는 86.5를 시전하고 있었다.


혹시나 팬티가 무거워졌나 하는 마음에, 속옷까지 모두 벗고 다시 확인했으나 86.3이었다. 아직 아침에 일어나서 물도 한 잔 안 마셨는데 말이다.


속상한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 길에 올랐다. 그 짧은 걸어 10분 거리를 차를 타고 가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찔만하니 찐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어제저녁, 알고 있었다.

살이 찌고 있다는 것을.


어제는 다행히 아이들이 좀 일찍 잠들어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부대 안에 들어가서 뜀박질을 좀 하다 왔다. 금요일에 체력측정이 있는데, 너무 연습을 안 해봐서 몸이나 좀 풀어 볼 생각이었다.


부대에서는 15시 30분부터 체력단련 시간인데, 나는 올해 육아시간을 써서 15시에 퇴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물론 핑계입니다)


오랜만에 땀을 좀 빼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들 보여주려고 사슴벌레 한 마리를 잡았다. 보람된 하루를 돌아보며 만족스러운 샤워를 마쳤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이 깊어 있었다.


그리고 자정, 나는 뱉어선 안될 말을 뱉고 말았다.


"아- 배고파"


배고프다는 말은 우리 부부를 공명 시키며, 특정 주파수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 마냥 당장 취식이 가용한 식량 리스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의견은 '얇은 피 만두'로 합치되었고(사실 나의 주장이었다), 12시 20분부터 찜기에 들어간 얇은 피 김치만두는 서늘한 가을 공기를 까부수며 집안을 휘저었다.


우리는 12시 40분부터 김치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애초에 "몇 개나 찔까"하는 아내의 물음에, "봉지 째 다"라고 대답한 터라, 과감한 젓가락 질을 이어나갔다.


마지막 만두를 양보해준 아내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나는 또 냉장고와 식료품 창고 주변을 굽어보았다. 찹쌀떡 2판이 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내는 나를 위해 전자레인지로 데운 떡을 가져다주었다.


목이 막혀 우유도 서너 컵 마시며 떡까지 종결시켰다. 이제야 포만감이 밀려왔다.


요즘 이상하게도 식욕이 핑핑 돌아서, 보통 저녁식사로 밥을 세 공기는 먹고 있다. 뭔가 호르몬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찔 놈이 찌는 건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성장기]라고 규정짓고 성장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었다.


물론 옆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지만, 끼니마다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지수를 높여갔다.


다시 어제의 일로 돌아오면, 배가 부른 나는 급격한 무기력 증에 빠져서 침대로 침대로 침대로 몸뚱이를 옮겼다. 그리곤 기분 좋은 잠에 빠지기 전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을 한 번... 재볼까?" 기분 좋은 기분과 기분 나쁜 걱정이 묘하게 섞여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오늘 아침. 역시 IN / OUT의 정산은 철저했고, 열량 보존의 법칙은 유효했다. 남은 열량은 모조리 빙하기를 대비하기 위한 체내 지방으로 축적되었다. 전 날 보다 1킬로, 전 주 보다 2킬로가 늘어있는 상태였다.


84도 선에서 휴전을 하고 있었던 나의 체중은 86도 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고, 이대로라면 초산에서 압록강 물을 떴다는 6사단의 전설을 반복할 것 같았다.


연초, 동기와 내기로 시작했던 다이어트는 오간데 없고 이젠 다시 지방 덩어리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일은 체력측정이 있는 날이다.


왕년을 생각하니, 튀어나온 뱃살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아- 옛 날이어.


정말, 왕년 왕년 그놈에 왕년에는 정말 날아다녔는데. 소위 중위 때는 3km 뜀걸음을 측정하면, 내 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2분 30초가 특급 기준이었지만, 10분이면, 혹은 컨디션 좋을 때는 10분도 안되어서 완주를 하곤 했었다.


야간 작전을 하고 나서도 산악으로 9킬로씩 뜀걸음을 하며 체력을 유지했었고, 체중도 늘 70킬로 초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보다 15킬로 정도는 불은 것 같다. 라면처럼, 우동 처럼 불은 것 같다. 꼴 보기 싫게 말이다.


그리고 당장 내일의 체력측정을 하려고 생각해보니, [왕년]에 비해 둘째 아이 하나를 더 업고 뛰는 꼴이 되었다. 푸시업을 할 때도 등 위에 아이 하나를 더 업고 하는 꼴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 군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체력등급에서 특급을 맞아보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매일 15시에 퇴근하며 체력관리를 하지 않았던 올해가 최초의 특급 아닌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뭘 더 할 수 있겠느냐'는 자문에, 스스로 답한다. "원래 중요한 경기 전날에는 탄수화물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푹 자는 게 중요하지. 그래야 실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거든"


그렇다. 오늘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논리를 마련했다. 마음을 놓고 떡을 한 팩 먹는다. 아, 점심시간에 글을 쓴 지 24분이 지났는데.. 눈이 감겨온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점심시간에 30분이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아- 튀어나온 뱃살과 접히는 목살 위로 졸린 눈, 그 눈에서 왕년 생각에 눈물이 찔끔 흐른다. 하-암.


(오늘은 사진 없다. 뚱뚱해진 내 사진을 올리려니 너무 보기 싫어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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