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JOMO
서울-경기에 아파트는 매월 1억씩 오르고, 삼성전자는 8만 원이 넘었고, 비트코인은 4천만 원이 되었다.
어른들께서 사회생활하다 보면 친구들끼리도 격차가 현격히 벌어진다고 하셨는데,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런 경우가 많이 생긴 것 같다.
무리해서라도 집 한 채 쥐고 있던 친구들은 노동 수입과 저축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몇 억'의 재산이 생겼다. 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식시장으로 갔던 친구들도 투자금에 적게는 50%에서 두 배, 세 배까지 벌었다. 이도 저도 아니고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이 어떻게 보면 제일 대박이 났다.
경기도에 가지고 있던 빌라 한 채는 빌빌 거리며 몇 년 만에 간신히 천 여만원의 올랐을 뿐이다. 어쭙잖게 달러에 투자했던 나는 조용히 -10%의 손실을 감당하고 있었다. 취미 삼아 리플(암호화폐)에 20만 원을 투자했는데, 미국 SEC에서 고소를 당해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나버렸다.
남들은 신나게 자산을 불리고 있는데, 나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자금을 만들어 '어디에라도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어제까지 같은 선상에 있던 친구들이 억억 하는 재산이 생겨버리니 우울한 생각마저 든다.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쉽게, 고립 공포감을 FOMO(fear of missing out)이라고 한다. 보통은 사교적인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 초청을 거절하지 않으려는 심정을 이야기하는 단어였는데, 요즘에는 경제-심리학적인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 것 같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잊히거나 혹은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조바심을 만들어내고 '무리'해서 '무리'에 합류하게 하는 만든다. 마치 홈쇼핑에서 재고가 몇 개 안 남았다고 한다든가, 빨간색 타이머가 깜빡거리면서 행사 종료를 경고하는 등의 상황에서 받는 느낌과도 같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 흐름에서 FOMO는 더 큰 진폭으로 사회 전반을 흔들어대고 있다. 실물경제야 어떻든 주식시장은 사상 최대로 과열되고 젊은 사람들은 영혼까지 끌어 대출을 받아 '살 집(living)'이 아닌 살 집(buy)'을 찾아다니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 자극적인 뉴스 기사들은 점점 더 고도의 FOMO화 된 사회를 조장하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고립되고 단절된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상황을 JOMO(joy of missing out)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생활 속에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거나 혼자만의 시간 자체가 필요했던 사람 들은데, 오히려 초대받지 못하는 혹은 요즘처럼 초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경제적인 경우에서도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장에 거품 낀 상승장에 올라타 고수익을 거두지는 않지만, 반대로 급한 마음에 실수할 염려도 없다. '아파트야 청약통장을 만들고 직장생활 꾸준히 하면서 살다 보면 나중에 청약하나 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한다.
눈 앞에 큰 기회를 놓칠 수 도 있겠지만, 시류에 휩쓸려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내면에 집중하며 조금 더 여유 있게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FOMO족들이 경제적으로 급격한 이득을 쫓으면서 느끼는 불안과 우울은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뭐가 좋다 나쁘다는 아니다. 그저 사회적 현상 속에서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불안하고 우울하니까. 자식 넷을 먹여 살리려면 더 열심히 벌고 정보에 민감하고 기회를 잡아채야 하는데, 내가 애들하고 산책하는 사이에 누군가는 좋은 주식을 고르고, 좋은 아파트를 고르니까 말이다.
나 같이 불안한 사람들이 모여서 거품의 하단부를 든든히 도 떠받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한 순간의 심리적인 요인으로 이 거품의 성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혹은 '세제'를 많이 풀어 끊임없이 거품이 피어오르는 상황에 바보같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FOMO든 JOMO든 기본적으로는 본인의 타고난 성향에 기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언론에 '책임'을 물어본다. 하지만 어쨌든 판단과 결정은 스스로의 몫. 너 영리하고 기민하지 못하면서 불안감만 느끼고 있는 나를 자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