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오늘부터 1일

마킹- 더- 타임

by 아빠 민구

시간이 흘-러 간다.

사람들은 그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채서 기록을 하고서는, 이만큼이 한 시간이다. 이 만큼은 하루고- 한 달이고- 일 년이다. 라고 말을 하며 기록을 한다.


세상이 생기면서부터 시간은 늘 있어왔지만, 그 시간을 인식하고 표기하고 규정지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다 이리저리 재단해놓고 잘게 쪼개 그 시간마다 의미와 기능을 부여한다.


그렇게 우리의 의미 있는 12월 31일이 지나갔고, 1월 1일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벌써 2주나 지났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빨라진다'라고 느끼는 것이 기억력의 감퇴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수록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적게 기억할수록 동영상을 건너뛰기하는 것처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이 시간을 나누고 그 시간마다 과업을 부여하고, 기록과 사진을 남기고- 손실률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때때로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되감아 본다면 시간이 느리게 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더 오래- 천천히 인생을 누리고 싶다면 흐르는 시간에 끊임없이 마킹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고통스러워 시간을 빨리 감아버리고 싶다면 최대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잔잔하게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역병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나도 집에만 박혀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지루하다. 즐거울 것 하나 없는 뉴스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열어보면서, 마치 내가 어디 즈음에서 얼마나 불우한 것인지를 측정하는 것 같다.


그렇게 더 자주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고, 뉴스를 보고, 어떻게든 이 제한된 영역에서의 제한된 시간을 소중하게 아껴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불우한 시간은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특별히 연말도- 연시도 치르지 않고 조용히도 가만히도 시간을 흘려보내 보았다. 목표도 다짐도 없이 말이다. 글도 안 쓰고, 운동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지낸 시간도 2주일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해 들어 마침 친한 친구와 같이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 덩치 큰 근육덩어리 녀석이 점심시간마다 턱걸이를 하자고 했다. 무슨 피곤하고 추운데 턱걸이인가- 하다가, 별생각 없이 따라나가 철봉을 당겼다. 손이 아리고 등이 저렸다.


얼마 만에 턱걸이를 한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오랜만에 근육을 썼으니 알이 배겼다. 일요일 저녁, 알이 벤 근육을 스트레칭을 하면서 무심코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요 며칠 의미도 없이 노력도 없이 지나간 시간을 눈처럼 꽁꽁 뭉쳐 뒤통수에다 던진 것처럼, 뭔가가 통수를 후려쳤다.


"바보 같은 놈. 그런다고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하든?"


시간은 느려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안 좋은 기억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마치 짧아지는 그림자를 보며 키가 작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바보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보스러움을 먹다 흘린 빵부스러기 털어내듯 툭툭 털고,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예전처럼 시간에 흠집을 내고 많은 것들을 표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간에 표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더 쪼개고 나누고 각각의 스케줄표를 만들어 알차고 보람되게 시간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심삼일은 원래 특기 중에 주특기였다. 별 고민 없이 시작하고 또 다른 흥미가 생기면 뭔가 또 시도하는 것이 참 좋았다. 그래서 아직도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되고 싶은 것들도 참 많다. 어른이 되어 현실의 벽에 부딪쳤지만 아직도 '장래희망'따위는 서랍에서 차고 넘쳐 발에 치인다.


그래서 '오늘부터 1일'거리를 하나씩 끄집어 내 보기로 했다.

우선은 근육덩어리 녀석 하고 턱걸이도 하고- 영어도, 아랍어도 하고- 독서도 하고- 공부도 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하고- 골프도 하고 말이다. 물론. 육아와 가사와 아내 다리 주무르기는 지금처럼 그대로 하고, 쪼개진 시간의 틈 사이에 즐거움의 씨앗들을 하나씩 심어 무심하게 키워내는 것이다.


그렇게 남들보다 10일이나 늦은 1월 11일이 되어서야 새해 다짐을 하게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