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토리
again and again and again
"아- 또 그 소리"
누구나 자신만의 레퍼토리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유독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아주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의 레퍼토리도 몇 번 듣다 보면 지겨워지고 듣기 싫어진다. 혹시 내가 존경하지도 않고 특별히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그만큼 피곤한 것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 '레퍼토리'라는 것이 그 사람을 지키는 방어기제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 쪽으로 물건이 날아오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그 레퍼토리는 눈꺼풀과 같이 그 자신을 보호한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갖는 생각과 오해, 편견 해 대해서 자신이 설명과 해명하고 싶은 것들이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외부적 접근에 대해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감추고 싶은 약점이나 상처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예방하고 혹은 선제적으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림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자기 방어기제'라는 근본적으로 소극적인 영역 중에서는 나름대로 '적극적 방어'를 수행하는 것이다.
보통은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사항(안물안궁)에 대해 먼저 말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듣는 횟수가 누적될수록 감정이 안 좋아질 수 있다. 흘려듣게 되거나 그 사람을 안 만나고 싶어 지는 것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의 또 다른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놈의 레퍼토리를 말해야 하냐-안 해야 하냐 라는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가장 쉬운 접근방법은, 남들이야 어떻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레퍼토리를 쏟아내는 것이다. 반복적인 언급을 통해 자아를 둘러싼 해자를 깊이 파서 자기 방어를 달성하면 된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접근방법은, 자신의 자아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고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정신적 약점이 있을 경우나 내면에서부터 충분한 자신감이 우러나오지 않는 경우에- 보통 자기 방어기제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레퍼토리를 또또또 말하는 사람에 대해 받아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들어주고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상처'라는 것이 그 사람의 자아에서 굉장히 근본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개선을 요구하거나 조언을 하거나 지적을 했을 경우 관계를 망가트리는 긴급 작동 버튼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왜 구구절절이 말을 하냐 하면,
나도 과거의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늘 떠들어대는 레퍼토리가 있는 사람으로서- 항상 옆에서 레퍼토리를 떠들어대는 사람에 대해 비난하고 기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자기 성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약하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사는 게 인생의 방법론이라면- '레퍼토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했던 말을 왜 또 하는지- 불만을 토로하지 말고 궁금증을 가지고 그 레퍼토리의 행간과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 아주 깊은 곳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폭발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초가 숨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레퍼토리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