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아내와 엄마 사이

남편이자 아들 입장에서 바라본 그 두 여자의 관계

by 아빠 민구



유부남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아내의 남편이 되어 살아가는 것 말이다.


뭐 꼭 우리 집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선적으로' 밝혀둔다.

'대체로 그런 것 같더라',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더라-' 정도로 이해하면서 받아들이면 서로의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으니 유의하시라.


기본적으로 '아들'이 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반쯤 엄마를 닮았고 엄마의 언어를 배웠으며 엄마의 입맛과 생활습관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잘 모른 채 지 잘났다고 살아간다.


그렇게 머리가 굵어지고 굵어져서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게 되면, 아들이기는 하지만 아들보다 '남편'으로 살아간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아들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라는 말이 나와야 보통(혹은 정상?)인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으나- 예전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들은 찾기 어려워졌다. 묶이고 나서 대체로 얽힐 일이 없으니 '정말 가족'이 되기는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 나간다면, 5년이나 10년 즈음 지나가면서는 '가족'이라는 마음이 우러나올 것 같다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와 아내는 1촌 사이라고 하기엔 좀 모호한 '내 아들의 여자''내 남편의 엄마' 정도의, 혹은 삼-사촌 정도의 거리감이 형성되었을 뿐이다.


식장에서 성혼 선언문이 낭독되고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가 접수되면 사실상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일진대, 소유권 이전 이후에도 전임자의 권리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모순이 발생했다.


'간도'라고 비유하면 어느 쪽으로부터 욕을 먹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상태에서 남자들의 위치는 '간도'정도라고 해두자.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그리고 스위스가 부러워지는 상황들이 이어진다.



상황은 언제든 발생한다.

엄마는 아들도 보고 싶고, 아들의 아들도 보고 싶다. 그리고 아들과 아들의 아들을 데리고 있는 아들의 여자와 연락을 해야 그 소식이라도 좀 전해 듣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다. 아들자식은 30년을 키워놔도 전화 한 통이 없으니 말이다.


아내는 남편을 키워주신 고마운 분께서 가끔 걸어오시는 영상통화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요구가 자주 혹은 매일같이 이어질 경우 '소유권 이전'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요한 국면은 해마다 돌아오는 유구한 전통의 명절들이다. 이론적으로는 보너스도 들어오고 쉬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는 '좋은 날'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좋지 않은 날'로 기억기도 한다. (우리 집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 30년 먹고 자랐는데, 어지간히 엄마의 음식 솜씨가 부족하지 않은 이상 남자는 평소보다 밥을 더 많이, 더 맛있게 먹게 되어있다. 그 모습에서 어떤 문제를 제시하면 안 된다. 매일 누워서 쉬던 소파를 보고 오랜만에 소파에 푹- 누워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평소에 전화 한 통 없고 무뚝뚝한 아들자식이 그의 자식들을 살뜰히도 챙기고, 그의 여자에게 가정적으로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던 아들자식이 능숙하게 설거지를 한다고 해서 불편해할 이유가 없다.



남자 입장에서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뭔지 모를 불편한 기색이 공기를 바꾼다. 이런 경우에 확실한 것은 남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연'하다는 뉘앙스로 풍기거나 공식적으로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하지만 혹시 편이 갈리는 불우한 상황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분께 충성을 다하고 약간 낮은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왜 이렇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냐) 남자의 엄마가 조금 서운할지언정, 궁극적으로는 아들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언젠가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 쉬운 접근방법으로는, 남편이 아내의 편이 되어주고- 아내가 남자의 여편이 되어주는 것이 한 몸 된 부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가 1촌보다 가까운 무촌이니까.


남자들은 이런 분야에서 특히 부족하고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감을 많이 호소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에서 누구도 다치거나 누구도 상처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몸속의 테스토스테론이 잠자코 있는 몇 안 되는 난해하고 난처한 상황이다.


그런 느낌이다. 만일 가능하다면 부대에 급한일이 생겼으면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결론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이 글은 누구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불만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떤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는 '유부남'이라는 특정 집단의 애로사항을 살펴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열해 보았을 뿐이다. 특히, 우리 집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조)


우리 모두 서로에게 혹은 남자에게 겨눈 화살을 거두자. 화살을 거두고 다 같이 빨래를 널자. 묵은 이불을 신명나게 밟아 빨고, 가을녘 상쾌한 바람에 빨래한 이불을 널어보자. 마당에서 말라가는 깨끗한 이불을 보며 맥주나 한 캔 마셔보자. 그러면서 생각해보자.


남자에게 가장 소중한 두 여성이 남자에겐 가장 큰 숙제라는 것.

그런 남자들의 고충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





해답 : 남성들이여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고 엄마에게 종종 전화하자. 아래 사진은 상황 파악을 위한 작전 요도.

출처 : e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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