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화초꾼

삽자루가 천직인가

by 아빠 민구



괄괄한 군인, 술과 담배는 기본, 축구와 테니스와 골프는 물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말은 짧고 간결하게. 주어진 임무는 확실하게.


뭐- 이런 것들이 트래디셔널 한 군인의 이미지는 아닐까. 저런 것들이 정말 군인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나 표현들이라면 나에게 적용되는 내용이 없음에도 10년이나 군생활을 이어온 것은 기적이 아닐는지.


대신에 나는 나무와 풀과 꽃을 좋아한다.

군 생활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업무는 '지형정찰'이다. 숲 속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수많은 수목과 화초가 좋다. 산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 이름을 알고 있다. 그 흔한 소나무를 종류별로 구분하고 종류별 소나무의 이름과 특징을 말할 수 있는 약간 이상한 사람이다.


매번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언제나 찾아다니는 곳은 근처 수목원이다. 또 조경업체나 식물을 파는 가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나 선인장을 좋아해서 한때는 스마트폰으로 매일같이 선인장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베란다에서 안 키워본 채소가 없다. 베란다 한 켠에는 분갈이를 위한 화분과 흙과 조경에 필요한 각종 돌들, 언젠가 키우려고 쌓여있는 각종 채소와 꽃, 선인장들의 씨앗이 쌓여있다.


초록의 군복을 입은 나는 초록을 사랑하는 화초꾼이다. 군홧발에 풀 한 포기 상할까 걱정하는 10년 차 군인이다.



어제오늘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기모 후드티를 입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운 날씨가 되었다. 뭐 날씨가 이렇게 덥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근처 공터에 가보니 벌써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이 밭을 갈아놨다. 파종을 하려나보다.


작년에 정북향 집에서 이제는 남서향 집으로 이사 왔으니, 올해엔 베란다에서 허브를 좀 키워야겠다. 상차림을 한결 향긋하게 해 줄 로즈마리와 바질을 심어야겠다.



(문득, 이 좁은 집에 뭐 이렇게 화분이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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