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너, 저 가재가 몇 살인 줄 아니

아마 넌 모를 거야

by 아빠 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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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를 키운 적이 있었다.

별 다른 배경지식 없이 시작을 했었는데, 그저 보기 좋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가재를 한 마리씩 사서 어항에 넣었다.


보기에는 좋았으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가장 덩치가 큰 수컷이 다른 수컷을 다 잡아먹어버렸다.


결국엔 가장 큰 수컷, 붉은 가재와- 암컷, 파란 가재가 살아남았다. 두-세 계절이 지나는 동안 먹이활동이 활발했던 수컷 가재는 네 차례, 그 보다 영양상태가 덜 좋았던 암컷 가재는 두 차례 탈피를 하며 몸집을 키웠다.


그렇게 성체가 된 두 가재는 교미 후 100여 개의 알을 포란했고, 한 달 후 어항에는 새끼 가재들이 빠글빠글해졌다. 알에서 막 나온 새끼 가재들은 모두 같이 좁쌀만 했다.


얼마 뒤 붉은 수컷 가재는 영양상태도 좋았고 수온이나 수질도 적당했으나 사체로 발견되었다. 별다른 이유 없어 '늙어 죽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는데, 어떤 치가재들은 서로 잡아먹고 먹히기도 했고, 먹이활동이 거의 없어 구석에 박혀있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먹성 좋게 끊임없이 달려들었던 녀석들은 일이 주 주기로 탈피를 하며 약 석 달만에 어미 가재만큼이나 큰 성체가 되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10206012922_1_rotate.jpeg 파란가재(어미)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날 부화한 형제다.

같은 알에서 나온 2세대 가재들인데도 어떤 녀석은 성체 크기가 되었고, 다른 녀석들은 아직도 새끼손톱 크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최종 100여 마리의 가재 중, 석 달이 지나는 시점에 다양한 크기가 된 12마리의 2세대 가재들이 세계를 이루었다.


이 가재 친구들은 작년 말 이사를 하면서 이웃주민에게 분양을 해드리고 왔다. 더는 만날 수 없었지만 , 가재를 키울 때 너무 좋았던 기억이 많아 여름이 되면 근처 또랑으로 가재를 잡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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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요 며칠 전, 가재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재는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응??"


수명이 없다고 한다. 가재는 환경이 좋지 않으면 수개월에서 2년 정도 살지만, 환경이 적합하다면 100년도 살고 200년도 산단다.


그렇게 거대해진 가재는 천적도 없어 특별히 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죽을 이유가 없는데, 그런 가재가 죽는 경우가 있었다.


탈피를 실패했을 경우.


가재는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탈피를 해야 하는데, 그 탈피 과정에서 집게발이나 머리가 허물에 걸려 빠지지 않게 되면 죽게 된다. 천적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허물에 갇혀 죽는다니.


아이들에게나 흥밋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이지만서도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같았다. 더 성장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의 한계에 가두어져 버리는 순간 성장이 멈출 뿐 아니라 생존도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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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심해에서 발견되는 거대 가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뚱뚱한 민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재 아니고 민구.


이제는 벗어버려야 할 껍데기 속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친구와 동료들은 저-만치 가버렸는데, 나만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일도 공부도 육아와 가사도 취미생활도 한답시고 늘 피곤한 척만 하고 있지, 실제로 내가 '성장'을 위한 성장통을 느끼고 매 국면에서 탈피를 하고 있냐는 자문을 했으나 자답할 수 없었다.


"너무 바빠서 브런치에 글 못써-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살이 찌고 있지- 집안일하고 애들 돌보는데 어떻게 공부까지 다 하냐- 곧 아기도 태어나는데 석사 공부는 당분간 휴학 연장해야지-"


나는 나 스스로를 이런저런 핑곗거리로 만든 껍데기 안에 꽁꽁 박혀 좁쌀만 한 가재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 스스로 내 상태를 인식했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으며, 껍데기를 찢고 나올 출구전략을 다시 한번 구상해봐야겠다. 이제 군인 월급으로 아내와 네 자녀를 부양해야 하니 좁쌀만 한 가재로 지낼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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