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뒷모습

아이들의 시선은

by 아빠 민구



배가 고팠다.

퇴근하자마자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입에 밀에 넣으며 말했다.


"준돌이들! 썰매 타야지!"


무료해하던 아이들은 당장에 호응했다.


"네! 좋아요! 출동!!"


체할 듯 위장을 채워놓고 아이들에게 장화를 신겼다. 나는 언제나처럼 츄리닝에 전투화 끈을 조여 맸다.


눈밭에선 웬만한 운동화나 장화보다 전투화가 최고다. 미끌리지 않고 어디든 뛰어갈 수 있다.


이 언덕 저 언덕 돌아다니며 가장 재밌게 놀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리저리 다니는 게 말이 쉽지, 오르막도 내리막도 눈길도 흙길도 풀밭도 시멘트 바닥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모든 곳을 썰매에 타고 이동했다.


둘이 합쳐 40킬로가 된 녀석들을 썰매에 태워 끌고 다니니 숨이 차고, 금세 등에서 땀이 흘렀다. 운동할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이라 생각했다.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그렇게 한-참을 놀다 보니 급격히 기력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썰매에 태워 집까지 오르막길 300여 미터를 끌고 올라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설매 줄 잡은 손이 저릿했다. 머리 위로 연신 입김이 피어올랐고, 속눈썹엔 얼음이 맺혔다.


잠깐 멈춰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데, 얌전히 썰매에 앉아서 추위에 웅크리고 붙어있는 준돌이들이 말했다.


"아빠 고탱 마나터", "아빠 수고했어요"


지친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아이들이 연신 고생했다, 수고했다며 나의 노고를 치하해줬다.


한 참을 썰매에 앉아서 바라봤을 나의 뒷모습이 꽤나 인상적으로 불쌍해 보였나 보다. 아이들이 면서 점점 작아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본다는데, 벌써 그렇게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몇십 미터를 끌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아내가 식사를 준비해놓았다.


"여보, 부탁이 있는데- 애들 밥 좀 먹여줘"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곤 곧장 소파에 몸을 얹어놓고 눈을 감았다.(죽었다는 건 아니고)


아이들이 고생 많았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고, 내 힘들어 보였을 뒷모습이 상상되었다.



아빠의 뒷모습.


생각해보니, 내가 아빠의 힘들어하시는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힘든 모습을 보이지도, 특별히 뒷모습을 보이지도 않으셨다.


어쩌다 배웅이라도 할라치면 손사래 치며 급하게 차를 몰아가셨다. 나에겐 아빠의 힘든 뒷모습을 볼 기회도, 그 뒤에 대고 '고생하셨다'라고 말할 기억도 없었던 것 같다.


아빠가 되며 '자식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에너지'와 '나의 무뚝뚝함'을 알아가게 되나 보다. 나는 아들이면서 아빠인데- 아빠이면서 아들인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수화기를 들고 '고생하셨다'라고 한 마디 드려야겠다.







아니 이런방법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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