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벌에 쏘이면 안돼요

아이의 절규

by 아빠 민구



청명한 가을 하늘과 따듯한 햇살, 시원한 바람.



코로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키즈카페, 놀이터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공원을 산책하려고 해도 마스크를 쓰고 크게 숨 쉴 수 없으니 답답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매일 산으로 들로 산책을 나간다. 우선 마주칠 사람이 없으니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자연에 나가면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것도 많고 신체적인 활동도 많아서 좋다.


요즘 다녀보니 산에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퇴근 후 해가지기 전 얼른 산행을 준비했다. 밤을 주으러 산길을 나서고, 밤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해서 [밤에 대해여] 몇 가지 설명을 하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밤을 주으려 여기저기 낙엽 사이를 살피고 있었고, 생각보다 아직 떨어진 밤송이가 적었다. 나는 더 밤이 많은 곳을 찾아 몇 발 앞서가고 있었다. 몇 걸음 옮기면서 아이들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았는데 내가 몇 걸음 전 밟은 곳에서 벌 수십-수백 마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벌집을 밟고 지나간 것이다.


"도망가!!!! 벌이야!!!!"


아내는 둘째를 옆에 들쳐 메고 첫째 손을 잡고 뒤로 돌아 뛰었다. 내 쪽으로 벌들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족과 직각이 되는 방향으로 손을 휘저으며 뛰었으나 벌이 달라붙었다.


머리와 팔다리에 벌을 쏘이며 비명을 질렀다.


이내 첫째 아이가 울며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내 쪽에 벌들을 좀 쫓아내고 아이 쪽으로 가보니 아직 벌 몇 마리가 첫째 주변을 맴돌며 공격할 곳을 찾고 있었다.


벌들을 떼어내고 쳐서 떨어뜨리고 다시 날아오르는 벌들을 밟았다. 더 이상 쫓아오는 벌은 없었다.


벌에 쏘인 첫째 아이는 크게 울었고, 다행히 아내와 둘째는 쏘이지 않았다.


아내가 연신 첫째를 끌어안고 같이 울며 달랬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떨어진 벌을 살펴보니, 다행히 독성이 심한 벌은 아니었다. 아이는 두 방을 쏘였는데, 다행히 치명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엄청 아팠을 것이다.


나는 머리에 다섯 방을 포함해 총 아홉 방을 쏘였는데,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내는 자지러지는 아이를 끌어안고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대신 쏘였어야 하는데"라며 함께 울었다.


첫째 아이는 자지러지게 우는 가운데에도 "엄마가 벌에 쏘이면 안 돼요"라고 반복하며 더 크게 울었다.


한 참이 지나 아이가 진정되고, 아내가 다시 물었다.


"준돌이가 잘 뛰니까, 엄마는 동생만 들쳐 메고 뛰었어. 미안해. 엄마는 준돌이가 잘 뛰어서 따라올 줄 알았어"


당시에 아이는 뛰어서 도망치지 않고 잠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입을 열었다.


"아빠가 소리 지르시는데 걱정돼서 혼자 도망갈 수 없었어요"


그렇게도 잘 달리는 아이는 내가 걱정되어 뛰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쏘이지 않을 수 있었던 벌을 쏘인 것이다.


마음이 이렇게 따듯한 아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고, 더 잘 살피지 않고 숲으로 데려간 것이 미안했다.



아이는 "다시는 밤 주으러 안 갈 거야"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아이에게 트라우마나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옆에 붙어서 몇 번에 몇 번이나 설명을 해주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아빠가 잘못한 거 아니야. 아빠도 벌집이 거기 있는지 몰랐어"


"벌들도 나쁜 거 아니야. 가족과 집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야"


"벌에 쏘인 것도 좋은 경험이야. 엄마는 아직도 살면서 벌에 한 번도 쏘여 보지 않았어. 나중에 더 조심하고 다닐 수 있을 거야"


"밤 주으러 온다고 벌에 쏘이는 게 아니야,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숲에 다녔어도 벌에 처음 쏘였잖아"


아이는 이내 진정되었다.



벌에 쏘인 자리는 대충 가라앉았다.

벌에 많이 쏘여본 전문가적 소견으로, 아이가 알러지적인 반응이 없고, 독침이 제거되었다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따끔한 교훈과 훈훈한 가족애를 느끼며 시작한 지 3분 만에 끝난 가을 산책을 마쳤다.


생각 없이 숲을 돌아다녔는데, 독이 오르는 가을이 된 만큼 더 조심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겠다. 나야 괜찮지만, 하마터면 아이들이 큰 일을 당할 뻔했다. 휴-


벌에 쏘인 자리가 간지럽다며 벅벅 긁고 있는 나를 보며 아내는 오늘도 말한다.

"물가에. 내놓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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