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의 살아온 세월을 다 아는 양 판단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그 사람이 '이런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공고한 성벽이 세워졌다. 아마도 그 벽을 허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에서는 거리가 좀 있는 타입의 사람이다. 나는. 느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답을 찾아내야 하는 시험공부를 하는 경우에도 '답을 찾는 것'보다는 '답 같은 느낌을 얻는 것'에 더 집중하며 시간을 보낸다.
직관을 더 믿고 의지하는 편인데, 원래도 그런 성향이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군생활을 하면서 더 강화된 영역이다. 군생활을 하면서 깊이를 가지고 만나는 - 같이 먹고 자고 훈련하며 지내는 -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경험적 데이터들이 축적되었고, 나름의 통계가 되어 판단의 메커니즘이 형성되었다.
군대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그 '판단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진-하게 시간을 보내고 또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한다. 그러다 1-2년쯤 지나면 난 또 새로운 곳으로 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이별과 만남은 길가의 풀이나 나무와도 같았다. 늘.
사람을 단번에 판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정확한 것은 그 사람의 성장환경(군대에선 신병이 오면 자신에 대해서 작성하는 기록부가 함께 동봉된다.)을 보는 것이다. 매우 정확도 높은 방법이었다. 현실에 모든 문제는 과거의 어느 지점과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대부분.
그렇게 그 사람의 글씨체나 글, 말투라든가 친구라든가 하는 요소들이 판단의 좋은 잣대가 되어왔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 사람의 SNS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동으로 프로파일링이 되며 그 사람 전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특정 데이터가 제공되야하거나 정보획들을 위한 노력/시간이 일정 부분 필요한 것들이다. 즉,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용하기에는 제한되는 방법이다. 그래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굴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 공감하고 이해하고 동의하는 바이다.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삶의 굴곡이 얼굴에 그대로 녹아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얼굴보다 더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눈빛이다.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고작해야 홍채뿐이겠지만 사실 그 사람의 마음이나 영혼의 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눈이다. 눈빛만 잘 읽어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단박에 나타난다. 눈빛을 속이겠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파악한 눈빛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세우는 것은 '내 생각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툴이다. 그래서 나는 눈빛이나 그 외에 앞에서 말한 방법들을 통해서 그 사람에 대한 선입관을 만들어 내 노력과 마음을 절약한다. 하지만 선입견이나 선입관은 그 말 자체에서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풍긴다. 아내 역시 나의 이런 '판단' 자체에 대해서 동의하거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잘 못됐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내가 사용하면서도 남들에게 들어내 놓고 사용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조용히 사용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사용도, 책임도 나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니까.
그러다 이 드라마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드라마는 6편으로 된 미니시리즈다. 시간이 없으니 시즌이 주욱- 나열된 드라마보다 미니시리즈를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갖는 2-3시간 정도의 짧은 호흡보다는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구성을 할 수 있고- 너무 지루하게 끌고 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미니시리즈가 갖는 장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Behind her eyes] 작품 제목에 끌려 주말 간 아내가 자고 나면 두 편씩 봤다. 그렇게 금, 토, 일 잠을 줄여 딱 삼일 걸렸다. 신선한 주제를 몰입감 높고 속도감 있게 전개해나가는 것이 인상 깊었다.
심리적인 상황의 묘사가 치명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자극적인 화면 구성이 아니더라도 긴장되거나 흥분되었다. 특히 눈빛과 목소리, 글씨를 통해 전달되는 사소한 것들이 화면 뒤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설명해주는 단서가 되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감정선과 심리선이 작품을 리드하는 것이 참 멋졌다.
내용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라는 것은 말해주고 싶다. (참고로 내가 본 모든 작품을 리뷰하거나 추천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반의 반도 안된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을 지원받아 작품을 감상하고 발행한 글입니다.
하지만, 제가 리뷰하는 것들은 감상한 작품 중 반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볼 만한 것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