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부모들의 어떤 선택으로 여기에 와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다른 선택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인공은 남자에게 버림받은 미혼모에 의해 길러지고, 엄마의 자동차사고를 통한 자살기도에서 혼자 살아남아 고아원에서 자라난다.
다시 한번 양부는 양모와 주인공을 버리고, 양모는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또다시 혼자가 되자 자연스럽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간다.
그런 부모에게서 나서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고아가 되었고 입양되었고 또다시 혼자가 된 그 모든 상황에서 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바꿀 수 없는 '운명'과 같은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선택'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불우한 고아에서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표면적으로는 금녀의 영역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 한 여성의 성공을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근본적으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구원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 자유의지는 매 순간 선택을 강요한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자신의 선택인 상황. 태어난 이후에 선택 없이는 한순간도 이어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인간이 살면서 하는 선택의 총합은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비록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반복되는 선택을 통해 그 어디로든 갈 수 있고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후회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미래의 내 처지와 내 자식들의 시작점을 충분히 바꿔줄 수 있다.
나와 가족들의 삶으로 돌아가 보자.
퇴근 후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나는 소파에 누워서 좀 쉴 수도 있고, 피곤을 이기고 아이들 옆에 앉아 동화책을 읽어줄 수도 있다. 서울에 집을 사서 자식들에게 몇 억씩이라도 남겨줄 수도 있고, 지방 소도시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자녀들과 자연놀이를 하면서 지낼 수도 있다.
맹모처럼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거나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서 아주 좋은 학력을 만들어줄 수도 있고, 가수가 되고 싶은 자녀들을 지원하며 BTS나 블랙핑크를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다 실패해서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다.
당장 우리만 해도 첫째 아이를 테니스 학원에 보낼지 수영을 보낼지 미술을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선택들은 미래의 어떤 한 지점에 대해 보이지 않는 지점에 대해 비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의 어떤 것들이 우리의 지금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선택은 그다음 선택을, 또 그다음 선택을 끌고 다가왔다가 지나치고 멀어진다. 하지만 한번 했던 선택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버튼을 누르는데 부담이 있다. 드라마에서 처럼 내 선택으로 자식에게 어떤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드라마는 매우 재미가 있었다. 아내는 몇 장면 보고서는 여배우의 연기가 별로라며 더 뜯어보지 않았지만, 나는 그 딱딱하고 어설픈 연기도 의도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니 더 재미가 있었다.
작품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연출들이 있다. 실제로 의도됐는지 아니면 나만의 망상 일렀는지 모르겠으나 하나의 감상 꼭지로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1. 고아원을 배경으로 주인공은 백인,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는 흑인이다. 흑이든 백이든 결국엔 체스판 위에서 같은 규칙, 같은 처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2. 주인공은 금녀의 영역이었던 체스라는 장르에서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여성으로, 체스판에서 유일한 여성으로 표현되는 기물인 '퀸'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이 되었다.
주인공을 둘러싼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른 성격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역할로 주인공이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스판 위에서 움직이는 각각의 말들과 같았다.
3. '인생은 선택'이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소재를 체스로 삼고 체스판에서 가로세로 공간으로 주어지는 선택지들은 인생과 체스가 같다는 전제로 표현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체스의 각 수마다 시계가 째각이며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매 순간 주어지는 선택에서의 시간적 압박과 같이 현실적인 부담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4. 주인공이 신경안정제에 중독이었다가 알코올 중독이었다가 체스에서의 승리에 중독된다.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로 중독에서 벗어나거나 또 다른 것에 중독되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의지에서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의 모든 중독과 탈출, 실패와 성공은 우리가 목표를 세워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성공하는 인생의 과정들과 너무 닮아있었다.
5. 주인공의 심경이나 상황에 따라 주인공을 부르는 호칭이 바뀌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때는 '엘리자베스'로 불리기도- '베스'라고 불리기도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는 '리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단순히 호칭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자아가 바뀌는 것을 의도하며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호칭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복장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서는 후줄근한 옷이나 고아원복을 입었지만 자신의 자아와 판단력이 성장하면서 자기 의지에 의해 더 멋지고 화려한 옷들을 입는다. 이 모든 것들이 성장과 관련된 심볼이라고 느껴졌다.
6. 체스판에서 '폰'은 세상 끝(상대 영역의 끝단)까지 이르렀을 때 자신이 원하는 기물로 바꿀 수 있는데, 주인공이 자신이 살던 세상을 넘어 소련까지 가서 체스의 챔피언(여왕)이 되었다. 마치 드라마 전체가 하나의 체스 대국과도 같이 설정되어있었다. 주인공은 보잘것없는 고아(폰)로 시작해서 최초의 여자 세계챔피언(퀸)이 되었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성공(승리)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승 후 하얀색 코트에 하얀색 모자를 쓰고 소련을 활보하는 장면이 마치 체스판 위를 활보하는 '퀸'의 모습과 같았다.
체스는 잘 모르지만 이 작품은 정말 재미있었다. 우리 인생을 체스의 한 판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도 좋은 선택을 하는 방법을 익히고 더 나은 삶을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듯한 응원 같았던 한 편의 드라마였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을 지원받아 작품을 감상하고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