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일병 이민오

미운 오리의 군생활

by 아빠 민구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민오는 한국으로 가는 회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가볍게 날아올랐다가 지구 반대편 인천공항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걱정과 기대가 반씩 섞인 마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세 살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간 이후 20년 만이었다.


"논.. 산.."


한국에 특별히 연고가 없었던 민오는 곧장 육군훈련소로 향했다. 공항에서 기차역으로, 기차역에서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민오는 미국에서 1년 가까이 공부해 온 한국어 실력이 꽤 쓸모 있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워했다.



"드디어.."


훈련소 앞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민오는 짧은 혼잣말을 뱉고는 곧장 훈련소로 들어갔다. 한국에는 지인 하나 없었다. 서운한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외로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걱정보다 기대가 한 발짝 앞섰다고 해야 할까.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알에서 깨듯, 지난 3년 가까이 꿈에 그리던 입대의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훈련소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그간 공부했던 한국어와 동료들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어딘가 좀 달랐다. 때문에 알아들을 듯하면서도 못 알아들을 상황이 반복되었다. 얼굴빛과 머리색은 같았으나, 자신의 행동과 생각은 어딘가 동료들과 좀 다르다는 것 또한 깨닫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미국에서 온 민오는 동료들 사이에선 '민오 리(Lee)'로 불리었는데, 몇 주간 생활을 하다 보니 동료들 뿐만 아니라 간부들 사이에서도 '민오 리'로 불리게 되었다.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민오에게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병사'라는 딱지가 붙었다.





"신고합니다, 이병 이민오!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수십 번 연습했던 그 몇 음절 말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안도감에 마음을 내려놓았으나, 민오의 군생활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전입 첫날부터 '관심병사'라는 이유로 대대장부터 중대장, 소대장, 부소대장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면담이 이어졌다. 무척 집중을 했음에도 불구화고 민오는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의사소통에서 오는 실수가 잦았고, 자연스럽게 같이 활동하는 분대나 소대에는 민오의 실수로 인한 연대책임이 늘 그림자같이 따라다녔다. 소대장이 엄마처럼 따라붙으며 챙겨주었으나 동료들 사이에서는 발음도 생각도, 행동도 조금은 다른 민오를 두고, '우리와는 다르다'라는 의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으휴 저 민오리 새끼..."


박 상병을 비롯한 몇몇 심술궂은 동료들은 민오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기도 했고,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럴수록 민오는 위축되고 동료들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오는 생각했다.


"내가 왜 한국에 왔지, 난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내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시간은 흘러 가을이 되었고, 민오는 일병이 되었다. 부대는 유격훈련을 앞두고 있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설상가상으로 유격훈련 입소 행군을 하면서 민오는 발목을 접질렸다. 소대장의 부축을 받아 의무대로 향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하루 이틀은 유격훈련에 참관만 하는 게 좋겠어"


군의관은 민오의 발목에 회색 압박붕대를 감아주었고, 민오도 내심 훈련에서 열외 하는 게 마음 편하지는 않아 '어떻게든 따라붙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유격! 유격!"


다음날, 동료들은 구호를 외치며 이 훈련장에서 저 훈련장으로 열심히도 뛰어다녔다. 장애물을 넘었고 암벽을 올랐다. 발목을 다친 민오는 하는 수 없이 소대장의 부축을 받아 동료들 뒤를 절뚝절뚝 따라다니며 훈련을 참관했다. 당연히 동료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지만, 민오는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때문에 발목의 회복은 더뎠다. 그리고 훈련 5일 차, 부대원들은 호수 옆 공터에 집합해 있었다. 다들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외줄 다리를 넘어가는 조교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조교는 외줄 다리를 능숙하게 건넜으나, 지켜보는 이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와- 씨. 저거 건너다 떨어지면 완전.."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걱정 섞인 잡담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외줄 다리는 생각보다 높고 길었다. 떨어지더라도 호수에 빠지는 것이니 다치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겁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외줄 다리를 건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열에 아홉은 외줄 다리 중간에 뒤집어져 대롱대롱 매달렸고, 간신히 조교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안전고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늘 민오를 괴롭히던 박 상병 차례였다. 민오는 속으로 연신 '떨어져라- 떨어져라-'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켜보던 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어-!!" (풍덩)


박 상병이 외줄 다리에서 뒤집어지는가 하더니 이내 떨어졌고, 안전고리의 문제가 있었는지 그대로 호수에 빠져 버렸다. 박 상병은 착용하고 있던 총과 장비들의 무게 때문에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풍덩) 그리고 그때, 또다시 모두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민오가 물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민오는 우아하게 호수를 가로질러 박 상병이 빠져 물거품만 남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당황한 모두가 발만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민오는 박 상병을 구해 기진맥진 밖으로 기어 나왔다.


민오는 곧이어 심폐소생술을 했다. 5분이 지났을까, 10분이 지났을까. 미친 듯 심폐소생술을 하던 민오는 지쳐 쓰러졌고 희미한 사이렌 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민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환자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옆에는 박 상병이 누워있었고, 앞에는 소대장이 걱정과 대견함이 묻어있는 표정으로 지켜서 있었다.


"민오 리, 정신이 좀 들어?"


벌써 12시간이 지난 후였다. 곧 박 상병도 깨어났다. 박 상병은 감사인사를 했다. 하지만 민오는 오히려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제가 속으로 '떨어져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거든요. 미안해요"


박 상병은 박 상병 나름대로, 지난날 자신의 괴롭힘을 사과했다. 둘은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 화해했다.




"일병 이민오! 감사합니다!"


민오는 단상 위에서 사단장에게 표창을 받았다. 사단장은 의례적인 악수 이후에도 민오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민오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은 '미움'에서 '동경'으로 바뀌어있었다.


동료들은 더 이상 민오를 따돌리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박 상병이 앞장서서 민오를 도왔고 언제나 동료들에 섞여 즐거운 군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일 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겨울이 되어, 민오는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전역 날, 민오는 위병소까지 배웅 나온 동료들과 한 명 한 명 포옹하고 악수했다. 먼저 전역한 박 상병 집에 며칠 머물며 전역한 동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기차역에서 기차역으로, 기차역에서 공항으로 여정은 어렵지 않았다. 민오는 군대에서 지내면서 한국어 실력이 꽤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 만족스러워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민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의자에 몸을 기대니 지난 일 년 반이 스쳐 지나갔다. 입대 전 품었던 걱정과 기대는 동료들과의 추억이 되어 미묘한 웃음으로 번져 나왔다. 미국에 있을 때, 주변에서는 '군대에 왜 가냐'라며 아우성이었지만, 실제로는 일 년 반 동안 배운 것도, 얻은 것도 셀 수 없었다. 입대 전에 비해 너무도 달라진 자신을 돌아보며 '다녀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민오를 실은 하얀색 비행기는 바다 위를 가볍게 날아올라 지구 반대편으로 향했다.






안데르센 '미운 오리 새끼' 다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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