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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내가 너의 손자 봐줄게

by 아빠 민구



와, 이거 안 계실 땐 어떻게 했나 싶다.


어제 장모님과 큰 이모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얼마간 지내시면서 육아를 도와주실 계획이다. 어제저녁, 모처럼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퇴근했다.


하지만, 집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어른이 넷에, 아이가 넷인데- 각 각의 행동을 관찰해보니 여백 한 줄 없이 모두가 각자의 삶을 열심히도 살고 있었다.


1) 아내 : 아이 젖을 먹고 돌보며, 필요한 육아용품과 식품을 주문하고 있다.

2) 어머님 : 첫째와 둘째 목욕을 시키시고 책을 읽어주신다.

3) 이모님 : 6명이 먹을 식사를 만들고 계신다.

4) 첫째 : 목욕을 하고 끊임없이 간식을 먹고 장난감을 어지렀다 치우기를 반복한다.

5) 둘째 :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월리를 찾아라를 같이 하자며 요구한다.

6) 셋째 : 그나마 순하게 누워있으나, 저녁잠이 없어 8시가 넘어까지 말똥 한 눈으로 놀아달라고 요구한다.

7) 넷째 : 뭐가 불편한지 빽빽 울어대다 7시께 잠이 들었다.

8) 민구 : 오랜만에 베란다며 옷방이며 안방이며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 스무 평도 안 되는 좁은 집에서 저렇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니 열기가 후끈하다. 땀이 주륵나고 비 오는 날의 습기까지 더해 끈적끈적하다. 단위 면적당 인구밀도가 이렇게 높을 수 있을까.


어찌 됐든 어른 둘이서 하던 것을, 어른 넷이서 하니 부담감은 확실히 줄었다. 맛있는 저녁 한상이 차려지니 맥주를 한 캔 딸 수밖에 없었다.


다이어트 중임을 잊게 만드는 맛으로, 오랜만에 또 밥을 두 번이나 리필했다. 거기에 맥주까지 들어가니 턱끝까지 숨이 차 헥헥거렸다.


그래도 장모님(+이모)께서 오시니 가끔이나마 이렇게 여유가 생기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이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나- 싶다.


지오디의 노래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떠올랐다.


"지치고 힘들 때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일러스트레읻_허 인스타그램 중 '손자바줄게' 작품


부른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저녁, 역시 조부모의 도움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저녁, 요 며칠간은 논문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뜬 저녁.


'내가 너의 손자 봐줄게-' 크, 아름다운 구절이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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