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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r 21. 2022

EP#07 형 둘 여동생 하나

요즘 잘 없는 포지션


셋째는 불쌍하다. 생각할수록 더 불쌍하다.


엄마 뱃속이. 아무래도 둘이 지내기에는 좀 좁은 공간이었나 보다. 태아 시절, 초음파로 관전해보면 엄마 뱃속에서 한 10cm 할 때부터도 셋째는 늘 넷째 발에 차이고 밀리며 이리저리 찌그러졌다.


조리원에서는 워낙 심하게 울어대는 넷째 탓에 셋째가 편할 날이 없었다. 셋째는 잠이 들었다가도 동생 삑삑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깨기 일수였다. 간호사들도 동생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는 셋째가 안쓰럽다며 집에 데려가고 싶어 했 정도다.


집에 돌아와서는 심하게 울며 엄마만 찾는 동생 탓에 엄마에게 셋째가 안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순하게 잘도 누워있었던 셋째 뒤통수는 호떡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엄마의 젖은 둘 다 먹기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분유와 함께 먹이곤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엄마 젖만 먹는 넷째가 모유를 독차지하였다. 셋째는 무던한 성격 덕분인지 어쩌다 보니 분유만 먹는 처지가 되었다.


넷째 딸이  늘 새 옷을 입는 것에 비해, 셋째는 첫째가 입고 둘째가 입었던 닳고 닿은 옷을 물려 입는다. 형들 옷은 계절별로 사이즈별로 뭐든지 구비되어있다.  장난감도- 보행기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형들도 중고로 사서 썼던 물건이 많은데, 그걸 또 물렸으니 정말 '새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 중이다.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다들 그런다. "어우~ 넷째가 딸이라서 얼마나 이뻐요~" 막내도 아니고. 또  딸도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귀여움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셋째의 처지를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는 상황이다.



그러니 셋째는 불쌍하다. 늘 애처롭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 아이들은 50% 이상이 한 자녀 가정이라고 하니. 형제가 있는, 그중에서도 많은 형제가 있는 나의 아이들은 정말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또 우리 집 셋째가 가지고 있는 포지션은 정말 독특한 환경이다. 형이 둘이요, 여동생이 하나인- 살아남기 쉽지 않은 입지를 타고났다.


 


그러다. 셋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알이도 뒤집기도 기어 다니기도 넷째보다 늦었지만, 아주 대단한 목청과 불쌍한 표정을 장착한 셋째는 이제 자신만의 생존 방법을 터득했다.


더 큰 소리로, 더 불쌍한 표정으로, 더 오래- 더 처절하게 우는 것이다. 안 안아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울기 시작하면 정말 막부터 기저귀까지 모든 것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들어서는 엄마의 보살핌과 일정 량의 모유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젖병을 들이밀어도 이젠 젖병을 밀치며 "먹기 싫다! 모유를 달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넷째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힘차게 뺏기도 하고, 넷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한다. 넷째가 울 때는 덩달아 따라 울기 시작해서 너 큰 소리로 우니, 안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셋째는 자신의 불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뒤집기 위해 나름의 분투를 하고 있다. 그 노력이 당연하다는 것은 이해하고, 응원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사회생활의 경험을 먼저 시작 한 셈이다.


처음에는 애가 너무 순해서, "와 저런 애 처음 키워본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애가 너무 찢어지게 울어서, "와 저런 애 처음 키워본다"라고 말하는 아이러니.


형 둘, 여동생 하나인 우리 셋째는 오늘도 그렇게. 자신의 몫을 다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단하다..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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