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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r 31. 2022

EP#08 고명딸

넷째 아이의 역할

아들, 아들, 아들. 그리고 딸.


우리 집 넷째는 완벽하게 고명딸 자리에 내려앉았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고 생일날 아침에 택배가 도착한 것 같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아이를 여섯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철부지가 뭘 알았겠느냐마는 애 하나 키우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를 낳아보니 수면은 반으로 줄고 지출은 배로 늘었다. 둘째를 낳았을 때도 거진 그랬다. 나의 여섯 자녀 시나리오는 폐기되었고, 그래도 현실적으로 셋은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사회를 만들어주고 부모와 함께 얽히고설키며 기댈 수 있는 좋은 형제들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셋째를 계획했다.


그리고 쌍둥이가 태어났다.


쌍둥이의 성별이 나오던 날이 생생하다. 둘 중 하나는 딸이라고 했을 때 말이다. 사형었더라면 무슨 럭비부처럼 되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대미를 장식하는 막내딸이 생겼다.


딸은 조리원에서부터 "내가 딸이야! 하나뿐인 딸이란 말이야!" 하는 것처럼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울고 또 울었다.


그만 울어달라고 호소를 해도, 아빠인 내가 그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작심을 한 것인지 배가 고프거나 잘 때에는 엄마가 아닌 사람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형제들 중 누구보다 강했다.


얼마 없는 모유는 자기 혼자 먹겠다는 생각인 건지 분유도 입에 대지 않았다. 모유만, 모유만 먹기를 반복하며 쌍둥이 오빠의 모유 쟁탈전에서 승리했다.


그래도 우리 집에 딸이 태어난 게 어디인가.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주 소중하고 고마운 아이이다.


벌써부터 아내는 신나 있다. 아이에게 발레를 가르치겠다는 둥, 하프를 가르치겠다는 둥, 브런치 먹으러 가겠다는 둥, 문화센터에 가자는 둥- 아이를 향한 엄마의 계획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안 낳았으면 어쩔뻔했을까.




딸아이는 오빠 셋 사이에서 조금 투박하고 소탈하게 자라지 않을까. 오빠들하고 축구도 차고, 낚시도 가고, 등산도 하면서 말이다.


반면 남자 녀석들도 집에 여동생 하나 있으니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닌다거나 여성에게 갖춰야 하는 예의를 배우면서 자랄 것이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나다. 지금 같이, 퇴근하면 우다닥닥 뛰어와서 "아빠 오셨어요!!"하고 다시 후닥닥 하던 놀이 하러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느 집 딸내미들처럼 아빠에게 안기고 반겨줄 그런 딸! 말이다.


아들들과의 투박하고 이성적인 대화 말고, 마음이 사르르 녹는 감성적인 딸바보가 되는 것이다.



막내에 대한 나와 아내의 기대는 이만큼 크다.


키울 때야 조금 힘들지만, 벌써 "아밥빱빠 압바"라고 옹알거리는 이 귀여운 넷째 딸아이를 보며 하루하루 힘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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