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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pr 07. 2022

EP#09 맏이의 겁

겁의 시작을 찾아서



유독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타입이다. 타고난 것일까.

아내를 보나, 나를 돌아보나 그렇게 겁이 많고 걱정 많은 스타일은 아니다 보니 타고났다고 보기에 어렵다. 어쨌든 첫째는 겁이 많다.


근데 사실 '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곤충을 잡거나 산양처럼 바위 언덕을 뛰어다니거나 하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어떤 특정 대상이 무섭다기보다는 부모의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나와 어떤 놀이를 하면서 재밌게 놀다가도- 아내가 와서 "그거 위험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병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소리를 치고, 뒤로 빠진다.


우선은 '학습된 두려움'이라고 생각을 하고 아이를 더 유심히 살폈다.


이 아이의 지난 6년을 돌이켜보며 어디서부터 이런 '학습된 두려움'이 나타났는지를 곱씹어보았다. 분명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첫째는, 타고나기로는 다소 겁이 없고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한 살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내 기억에 이 아이의 네 살은 참 모질고 상처되는 기억이 많은 시기다.


연년생 두 아이에 대한 육아 스트레스와 거주 불안으로 인해 아내는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과 아내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나에게도 역시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서른도 넘어서 감정표현과 자기 통제에 서툴렀다.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면에서 확실히 미숙했다.



결국 별것도 아닌 것들이 팽팽하게 당겨진 스트레스 위로 오르내리면서 '화'로 치환되었다. 첫째, 둘째 아이의 사소한 사고와 장난에도 불꽃이 삐져나왔고. 아이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었던 수많은 문제와 현상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나 스스로도 번아웃이 왔다.


참 못나고 부족한 아빠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조금 한 실수나 문제에도 크게 소리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아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점점 더- 더 자주- 그렇게 되었다.


고작 이 만큼 되짚어봤는데도. 아이의 '학습된 겁'은 변명할 수 없는 내 잘못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꼬리가 긴 한숨이 줄줄이 삐져나왔. 내 잘못이었다.


지금은 또 지금대로 그 학습된 겁이 반복되고 더 강화되고 있다. 요즘에는 그래도 내가 예전에 비해 화를 잘 참는 편이라 화낼 일이 거의 없지만, 아이 넷을 돌보는 손이 부족하다 보니- 쌍둥이들이 위험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려고 할 때 어떻게 할 수 없어 큰 소리로 경고한다.


"어어어 어-!! 위험해-!!!!"라고 외치면 그럴 땐 어김없이 첫째가 나타나서 동생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막아주고, 데려온다. 다만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과 '겁'이 그림자처럼 첫째를 따라다닌다.



이런 것도 문제다. 첫째 아이가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겁을 내면, 둘째 아이는 그게 맞는 행동인 줄 알고 그대로 따라 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형 둘이서 그렇게 겁먹고 난리를 치고 있으면 정말 보고 있기가 쉽지 않다.


첫째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겁먹을 일 아니다", "바보같이 왜 그러냐", "용감하게 행동해라"라며 아이를 '재설정'하려고 하지만, 아이는 바보 같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겁을 집어 먹고 자아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다시 바꿔나가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가하니 후회가 차오른다. 고깟 사고 좀 치고, 어지럽히면 어떤가- 그거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호둘갑 떨면서 혼을 내고 야단을 치고 난리법석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아는데, 그때는 몰랐다.


어쩌면 아직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부모였던 것 같다.


하나만 낳아서도 정말 잘 키우는 사람들 많다. 나는 좀 돌아서 온 것 같다. 아이를 넷이라 키우면서, 해볼 수 있는 실수와 잘못은 누구보다 많이 했고. 이제는 정말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7살이 된 첫째의 겁은 어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턱 내리고 앉아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본연의 밝은 색이 다시 발현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게 된 잘못된 방법을 바탕으로, 네 아이 모두 잘. 키울 것이다. 잘.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나의 과거처럼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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