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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pr 11. 2022

Ep#10 둘째, 우울탈출 성공

날개를 편 천재



작년 12월 초에 이사를 와서부터, 둘째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형만 등원하고 나면, 늦게까지 자던 둘째가 깨어나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코로나도 문제였고 쌍둥이들 돌보느라 숨 돌릴 틈 없었던 엄마가 둘째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오히려 둘째는 엄마의 잔심부름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았다. 방바닥에 누워 형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애니메이션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형이 돌아오면 부서지거나 없어진 장난감으로 늘 싸움이 붙었고, 애니메이션를 보는 건 정신건강을 악화시켰다. 과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소란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아이인데, 형 없이 그렇게- 그냥 혼자 집에 있을 때에는 콘센트가 빠져버린 것처럼 가라앉아버렸다.


며칠씩 집 밖에도 못 나가고 그렇게 넝마 조각처럼 지낸 기간이 꼬박 삼 개월.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둘째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져갔다. 하루 종일 손을 입에 넣고 빨아댔고, 온갖 투정으로 하루가 얼룩졌다. 그러다 혼나기라도 하면 속상함을 표출하며 울었다.


원래는 해바라기처럼 밝았던 둘째의 우울은 겨울만큼이나 파랗고 길었다.


아내는 병원에라도 데려가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해결책은 상담이나 약이 아니었다. 상자 안에서 아이를 꺼내 주는 것 말고는 답도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 확진과 격리를 넘어, 3월이 되었고 아이는 대기하던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형과 함께하는 어린이집 등원은 아이겐 즐거운 것이었다. 물론 이제 여섯 살에 아빠가 군인인지라 벌써 몇 번째 어린이집인지 셀 수도 없이 옮겨 다니며 생긴 나름의 '깡'도 있겠지만- 적응기간이라는 것이 필요도 없었다.


둘째는 즐거워했다. 등원 발걸음은 가벼웠고, 하원해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무슨 놀이를 했는지, 어떤 친구가 있는지. 심지어 며칠 전에는 "같은 반에 목소리가 정말 이쁜 여자아이가 있다"라며 입꼬리를 올리기도 했다.


손가락을 물고 빠는 일도 없어졌다. 겨울이 가고 나뭇가지에 싹이 트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억지스러운 투정도 줄었고 특유의 말장난이나 농담도 다시 늘었다. 형제들과 지낼 때도 양보하고 배려했다. 예전에 맑은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니, 재성이 다시 발휘되었다.


둘째는 머리가 엄청 좋다. 암기력과 이해력, 표현력이 남다르다. 특히 상황에 맞는 정확한 언어적 표현을 정말 잘하는데 그런 장점이 돗을 단 배처럼, 날갤 단 새처럼 살아났다. 이제야 아내는 한숨을 돌렸다.


둘째의 우울과 투정으로 인해 가족 모두의 감정 소모가 심했다. 둘째가 안쓰러우면서도 참다 참다 쓴소리가 나가고 결국엔 서로 언성을 높이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를 반복했었다. 그런 지난날을 돌아보니 '간신히 버텼다'라는 생각에 안도되었다.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준 둘째에게 고맙다. 정말 시간이 없지만- 저번에 독자분들께서 조언해주셨던 것처럼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둘째와 단 둘이 데이트라도 해야겠다. 아빠의 구박을 받아왔으면서도 정말 이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고마운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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