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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an 26. 2022

EP#06 둘째의 우울

나에겐 너무 어려운 아이



시간을 내 키보드를 몇 번 잡았으나, 번번이 글이 이어지지 않았다. 둘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언제나 복잡하고- 어려웠다.


흔히들 둘째는 사랑이라고 한다. 첫째를 키우면서는 처음 만나는 온갖 어려움과 걱정 때문에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쏟지 못했다면, 둘째를 키우면서는 아이의 잘못된 점이나 걱정에 집중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둘째는 '사랑-'은 아니었다.


둘째가 태어나자 모두가 둘째를 축복했고 이뻐해 주었다.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첫째에 비해 누구에게나 안기고 애교를 부리는 둘째는 확실히 어필이 되었다. 둘째는 형에게 집중되었던 사랑을 열심히도 뺏어갔다.


나는 나의 첫 아이, 하준이를 지키고 싶었다. 다 가졌다가 너무 어린 나이에 절반 이상 뺏겨버린 첫째 아이의 자아가 걱정되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둘째를 더 질책하고 첫째를 챙겼다. 둘째는 아주 어려서부터 나의 구박을 받으며 자랐다.


내가 어리석었던 주요 포인트이다. 첫째를 더 사랑하면 되는데, 첫째만 더 사랑해주었다. 그리고 극적인 대비 효과를 위해 둘째에게 더 모질게 대했다. 그게 첫째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둘째는 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기가 형이고 싶어 한다. 둘째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결핍이 항상 꼬리를 길게 늘이고 따라다닌다. 특히 아빠로부터의 인정과 칭찬, 애정에 목마른 아이다.


최근에는 둘째 아이의 우울증도 있다. 이사 오고 나서 어린이집을 대기 중이라, 형이 등원하고 나면 둘째는 집안 어디에선가 방기 되어버린다. 아내는 앙앙 울어대는 쌍둥이를 보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야외 활동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의 아이가 집에만 있으니, 또 충분히 케어해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아이는 우울감에 빠진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어른들의 우울증 하고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부대에서 다년간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을 케어했던 내가 생각했을 때는 그렇다. 이것도 일종의-


둘째는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형에 대한 칭찬에 질투하며 삐지기 일수다. 자다가 울면서 깨거나 억지 부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원래, 둘째는 첫째에 비해 자아가 더 단단한 편이었다. 나에게 혼나도 기죽지 않고 덤벼들던 아이다. 둘째에게 '잘못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라도 잘 웃고, 잘 놀고, 잘 안기는 아이 었다. 모르는 사람의 손도 잘 잡고 말도 잘 걸 줄 아는 그런 아이 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다가와선 "나 아빠 좋아-"라며 힁- 웃고 가는 그런 아이 었다.


그런 아이가 최근에는 너무 쉽게 '아빠 미안해요'라는 말을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더라도 분위기가 조금 안 좋거나 문제가 생기면 쪼르르 달려와 자기가 미안하다고 한다. 그 밝았던 의준이가 어디로 간 것일까. 눈 부릅뜨고 울면서도 끝내 잘못했다고 할 줄 몰랐던 그 아이는 사라진 걸까.


마음이 쓰리고 저리다. 내가 아이들을 대단히 잘 못 키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통을 휘휘 감는다.



둘째는 새로운 격정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늘 빼앗던 역할만 해오던 아이가 이제는 쌍둥이 동생들에게 빼앗기는 처지가 되었다. 부모의 사랑도, 시선도, 시간도- 쌍둥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는 6년 간 살아오면서 뺏어본 적 밖에 없었다. 빼앗긴 6개월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사랑과 웃음이 탑재된 이 사랑스럽고 가여운 아이는 엄마를 도와 동생들을 돌볼 줄 아는 예쁜 마음을 가졌다.


만 50개월 된 아이가 뭘 할 줄 안다고-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지면 앞장서서 동생들을 달래주고 놀아준다. 힘도 제법 세져서 멀리 기어간 동생들을 들어다 옮겨주기도 한다. 아내가 첫째를 등원시킬 때 몇 분이지만 집에 남아 동생들을 돌봐주는 게 이 든든한 둘째다. 동생들도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잘 웃는 형, 오빠가 좋은지 둘째랑 눈이 마주치면 생글생긋 웃는다.


부쩍 젖살이 빠지면서 '뚱실이'라는 별칭을 셋째 동생에게 물려준 둘째는, 이제 형이 될 준비가 된 것일까. 아빠에게 긁힌 마음을 형이나 동생들에 대한 미움이나 아니라 사랑으로 바꿀 줄 아는 아이인 것일까.


아이에겐 우울감 속에서도 피어나는 웃음과 사랑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미안하다. 고개를 들고 있기에 민망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성품에도 적용된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서 둘째와 같은 아이가 나고 자란다는 것이 딱 그 짝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쓴 건지, 또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언제나 둘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복잡하고 어렵다.


최근 들어 반성하고 반성하면서 둘째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질책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런 다짐을 실천하며 이어나가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네 아이를 돌보는 정글 속 삶이라-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반드시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울수록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나의 가정은 무너져버릴 것이다. 나와 아내, 네 아이를 위해서 다리에 힘 빡 주고 버티고서서 뜯어고쳐야 한다.



이제 이틀 뒤면 한 달간의 작전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간다. 뜨겁지만 정돈된 마음으로 둘째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아주어야겠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두 번 말해야겠다.



하루종일 집에있어 답답한 둘째 목마태워 야간 산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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