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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Dec 01. 2021

EP#03 부모로부터, 그리고 부모로서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인가




부모가 된 나의 모습을 곱씹어볼수록 나의 장점과 단점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나는 파랑, 검정, 빨강으로 된 사람이다. 나의 감정은 한 없이 차갑고 우울하거나, 밋밋하게 무덤덤하거나,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세 가지로 되어있었다.


그러니 수줍어하거나 미안하거나 피곤하거나 춥거나 신나거나 혼란스럽거나 귀찮거나 행복하거나 하는 여러 상태와 감정들이 각각의 특성에 맞춰 적절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주황색, 살구색, 분홍색 세분화되어야 하는 감정들이 싸잡아서 '빨강'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맞벌이 때문인지, 사회화가 덜 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결핍 때문인지- 자라면서 적절한 감정 인지와 표현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하니, 내가 생각나는 아버지의 색깔은 나와 같은 파랑, 검정, 빨강. 그뿐이었다.


글 쓰는 당사자로서 소름 돋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일찍 소천하셔서 직접 뵌 기억은 없지만 아마 할아버지도 비슷한 색깔의 사람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피었다.



나의 큰 단점 중 다른 하나는 '남 탓'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말을 곧잘 하는 첫째와 둘째는 종종 '남 탓'을 하고 있었다.

"아이- 형이 그렇게 해서 이렇게 됐잖아-!!", "아- 아빠 때문에-!!"라든가 이와 비슷한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것이 생각났다. 간이 구겨졌다.


며칠 전 첫째 둘째가 싸움이 나서 불러 세워다 놓고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빠한테 이야기해봐"라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 탓이 습관화된 아이들은 '자기 잘못'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서로의 잘못만을 이야기했다.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 아쉽게도 어머니가 떠오르는 몇몇 장면이 있었다. 물론 나의 모습도 겹쳤다. 내가 지금까지 나도 똑바로 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훈육하겠다고 덤벼들었나- 하는 민망함이 스몄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장점들도 많다. 그리고 그 형질들은 약점과 더불어 나를 구성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젖어들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것들이 어디 가질 않았다.


나의 장점과 단점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거슬러 생각해보니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마 조선과 고려시대를 살았던 조부모까지 올라가더라도 슷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큼지막한 코와 두툼한 귓볼을 포함해서 말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강점은 곱하고, 약점은 나누어 물려주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여정 이리라. 평생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뜯어보면서 편집해나가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기쁨이 지 않을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형질과 개인의 성향, 겪어나갈 경험들에 온전한 훈육을 가미해가며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날 멋진 아이들로 키워주고 싶다. 부모로부터의 약점을 단단한 방패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장점을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빨갛고 검고 파란 아빠가 반성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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