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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an 05. 2022

EP#04 존재감 투쟁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




하루는 고되다. 아마 사회생활을 하는 나보다 몇 년째 같은 일만 반복하는 아내에게 더 고될 것이다. 그렇게 어깨 위로 쌓 시간이 벌써 만 7년이 되어 며칠 전 결혼 7주년 꽃다발을 안겨었다.


퇴근길에 운 좋게 주운 케잌과 꽃


아이가 넷이 되니 하루는 쉴틈이 없이 꽉 채워서 돌고 돈다. 어떤 아이 하나 진득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책을 읽어줄 만한 여유라는 것이 없다.


모두가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대로. 쌍둥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모두가 각자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다.


누구 하나 포기하면 모두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끌어다 쓰고 영혼까지 녹여가며 지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모두가 자신의 존재감과 자아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하고 있다.



마음이 여리고 이쁜 첫째는 좀처럼 동생들을 시기하거나 조금도 해코지하지 않는다. 양보할 것을 다 하고 결국엔 속상한 마음에 울거나 삐질 뿐이다. 이제 겨우 일곱 살이면서 벌써 동생이 셋인 이 아이의 마음속에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자주 울고 또 오래 운다. 양보만 6년 차인 이 아이의 마음은 어떤 색일까.


첫째는 오래 울고 서럽게 울면서, 또 삐짐으로써 나와 아내의 관심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제일 안쓰럽고 미안한 손가락이다. 가장 좋은 대우,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아이가 가져갈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요즘엔 1/4이 채 되지 않는다.


맏이


사랑스러운 둘째는 애교가 많고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다. 형의 사랑과 형의 옷과 형의 장난감을 빼앗으며 5년을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둘이나, 그것도 한 번에 생겨나서 자신이 확보한 지분을 사막의 폭풍처럼 앗아가고 있다. 위기감이 이 아이를 더 극단으로 몰아낸다.


빼앗는 것에 익숙했던 이 아이가 뺏기는 일이 많아지자 애교는 더 많아지고 고집과 욕심은 더 강해졌다. 둘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집요하게 엄마와 아빠의 젖꼭지를 만지고 "나 엄마 좋아, 나 아빠 좋아"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역시 안쓰럽기 그지없다.


차남



양배추 같이 묵직한 셋째와 양상추처럼 가벼운 넷째는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누구 하나 울면 질세라 더 크게 울기를 반복한다. 잘 놀다가도, 잘 먹다가도 부도가 다른 쌍둥이 형제를 안으면 칭얼대기 시작한다. 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할당된 리소스가 1/4인데, 끈질긴 노력으로 요즘엔 각각 1/2씩 차지하고 있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말도 더 많이 걸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성의 있게 먹여주고 닦여주고 입혀줬을 텐데- 상황은 늘 급박하게 돌아간다. 쫓기며 안고 달래고 먹이고 재운다. 항상 "제발 부탁이야"라는 말로 시작해 아이들을 달래는 이 상황에, 아이들은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목소리 높여 울고 또 운다.


3호기 4호기



아이들이 잠들고 집안일이 시작되면 피로가 몰려온다. 피로를 걷어내며 간신히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흘러내린다. 그러다 아내는 한마디 툭 내뱉는다.


"나 외로워"


외롭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거실, 개켜져 나가고 있는 첩첩산중의 빨래들 위로 그 말이 빙빙 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이 자면 집안일을 하고, 쓰러져 잠이 드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느끼는 감정의 농축액이 '외로움' 인가보다. 아내는 '외롭다'는 그 한마디 비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아내의 대화는 거진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이뤄지고 있었다. 감정 전달을 할 여유가 없었다. 네 아이 육아는 실전이고 정글이었다. 생존을 논하는 자리에서 로맨스가 피어오르기 어려웠다.


고생 고수


나는 나대로 일찍 출근해서 한시라도 빠른 퇴근을 위해 애를 쓰고, 퇴근을 하면 전투화 끈을 푸는 현관에서부터 집안일을 시작한다. 운동이며 취미생활이며 하는 것들은 고사하고 목욕조차 못할 때도 있다. 나는 브런치에 손댈 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언제나 글 한 편 쓰려나-' 각을 재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내 존재감을 표출한다.


고생 전문가


우리 모두, 수고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사랑하는 내 식구 모두에게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 우리 이 모든 시간을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말하고 싶다.


누구보다 무엇보다. 장기간 작전에 파견되어 홀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아내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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