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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Dec 01. 2021

EP#02 감정의 과부하

자주 화난 아빠



아이를 아이의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이 생긴다. 개인별로 답답함을 표출하는 방법이야 있겠지만, 성질이 못돼먹은 나 같은 경우에는 '화'가 난다. 늘 눈살을 찌푸리고 어딘가 화 풀 곳을 향해 발사를 준비하는 앵그리버드처럼 분노의 표적은 이해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잠을 못 자고 할 일은 쌓이다 보면 그 불꽃의 점화는 쉽게 일어난다. 뜨겁게 사랑해주고 뜨겁게 화내는 부모보다는 늘 가운데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들었는데, 돌아보니 나는 정말 뜨겁게 사랑하고 혼내는 아빠였다.


감정의 과부하는 아내,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단연코 그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억울할 수 있는 대상은 아이들이었다.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도, 혹은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는 아이들 말이다.


보통은 그렇게 흘러넘친 감정들은 어디론가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감정의 하수구가 되어 하루 종일 부모의 감정을 받아낸다. 아이들이 우는 건 어찌 보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지 모른다.


나는 화가 많은 덜 다듬어진 사람이다.


어젯밤엔, 오은영 박사님이 말하셨다며 아내가 알려주었다. 감정의 표현을 잘 배우지 못한 경우에는 배가 고파도 화를 내고 슬퍼도, 피곤해도 화를 낸다고. 그렇게 듣고 보니 그게 딱 내 짝이었다. 내가 그렇다. 물론 그 분노의 힘으로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화를 낼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수시로 뿜어내는 화염은 아이들 마음 화상을 입다. 경미한 경우에는 아물기도 하겠지만, 심하면 흉터를 남기게 된다. 첫째의 경우에는 어릴 적 나에게 심하게 혼났던 경우나 나와 아내가 싸웠던 장면을 회상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잘 아물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다.


"당시에는 나도 부모가 처음이었고, 부족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고 변명을 해보아도 바뀌는 건 없다. 첫째 아이는 상처를 입었다.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봤지만,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전자기판에 과도한 전류가 흐르면 기판은 타버린다. 지금처럼 툭-하면 화를 내는 아빠로 살다가는 아이들의 마음 회로에 어떤 부분을 태워버릴지 모른다.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혼내기보다는 일관성을 가지고 더 정돈된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감정의 과부하만은 피해보자고 다짐했다.



나는 자주 화난 아빠가 아니라 자주 웃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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