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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an 18. 2022

또 한 주 자리를 비우고

새벽 네 시, 아직 우리의 하루는 진행 중



지난 두 주에 걸쳐 진행된 작전이 이번 주에도 계속된다.


월요일 새벽에 출발하면 금요일 저녁에나 오는 일정이다 보니, 네 아이 육아는 아내의 진땀과 장인 장모님의 도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 넷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짐이다. 아내와 둘이서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내가 떠나면 아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으로서 참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각자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겠지마는 유독 아내에게는 그 무게가 과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소한 보다는 훨씬 더 무겁지 않을까.


평일에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주말에는 아이들과 더 처절하게 놀아준다. 렇게 주말을 마치는 일요일 저녁이 되자 피로에 온몸이 잠겼다. 열 시가 좀 넘어 아이들을 모두 재웠으나, 나와 아내는 목욕도 못한 채 아이들을 재우다 그 옆에 쭈그러져 잠에 들었다.

 

자정께, 셋째가 울어 잠깐 잠이 깨었는데 집안 꼴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섯 명이 세 끼를 먹은 그릇과 컵, 젖병이 주방을 점하고 있었다. 최대 용량 건조기가 여섯 번을 연달아 토해놓은 빨래도 한쪽 방을 꽉 채우고 있었다. 장난감과 인형, 각종 생활용품들이 거실에서 뒤엉켜 굴러다니고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는 베란다를 가득. 그냥 잘 수는 없었다.


커피머신에서 룽고 두 잔을 연속해서 뽑아 마시고 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관심 있는 정치, 역사, 과학 유튜브를 재생목록에 얹고 이어폰을 꼈다. 팔을 걷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주방에서 화장실, 거실에서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가며 해치워나가는 동안 시간은 흘러 네 시가 되었고. 넷째 우는 소리에 아내가 깼다. 아내는 출근해야 하는 나를 걱정하며 자라고 자라고 했다. 리의 네 시는 아직 진행 중인 하루의 연속이었다.


아직 집안일이 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아내의 채근에 하는 수 없이 재활용 쓰레기만 배출하고 잠을 청했다. 커피 때문인지- 다 끝나지 않은 일의 부담감 때문인지- 잠이 곧장 들지 않고 수면 같은 애매한 정신이 계속되었다.


여섯 시가 되어 출근 준비를 하고, 또 일주일간 못 볼 아이들 볼에 뽀뽀를 했다. 찬기운이 들었는지 아이들은 잠시간 꼼지락 거리다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열심히 잠을 이어갔다.


아내는 빨래가 쌓여있던 방 한켠에서 빨래와 뒤섞여 자고 있었다. 이제 간다고 인사를 하자 아내가 뻑뻑한 눈으로 영양제 한 움큼을 가방에 챙겨주었다.


식솔들을 뒤로하고 현관을 나서니 금세 속눈썹에 얼음이 맺혔다. 이제 집을 떠났으니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안전히 집으로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을 떠나 집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일 할 때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부양자의 의무일 것이다. 무를 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기쁜 일이다. 내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는 것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꿈과 욕구만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면, 이제는 책임과 행복이 연료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것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아니다. 행복하다고,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인증하는 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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