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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r 22. 2022

내가 주부라면

Daydreaming


"여보, 내가 주부라면 말이야"


집안일이 산적했지만 손도 댈 수 없었다. 아내와 내가 우는 쌍둥이를 하나씩 안고 있었다.


집안일이 너무 하고 싶어 안달이난 내가 말했다.


"내가 주부라면, 우선 애들을 보낼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어린이집에 보낼 거야"


"안되지~ 애들이 어린데"


"그다음에는 음악을 신나게 틀어놓고 미친 듯이 집 정리를 하는 거지. 그러다가 갈증이 나면 맥주를 한 잔 때리고-!"


"때리고-?"


"낮잠을 한 숨 자는 거야. 소파에 누워서 창문 열어놓고, 담요 하나 덮고."


"얼시구"


"그러다 좀 추운 기운이 들어서 깨면, 베란다에서 따듯한 햇볕 쬐면서 룽고를 한 잔 마시는 거지. 책도 한 권 읽고."


해를 쬐면서 꾸벅 졸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까 돌려놓았던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가 다 되었으면 그걸 다 정리해 놓고. 그러고 나면 애들 하원할 시간이 될 거 아냐"


하, 그냥 다 세탁소에 맡겨버릴까.


"그러면 하원 시키면서 산책 좀 하고, 집에 와서 과일 깎아 먹이고. 그리고 여보가 퇴근하면 맛있는 음식 배달시켜먹지~!"


"매일?"


"주에 세네 번 정도?"


아내는 나의 완벽한 계획에 '이혼 각'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완벽한 계획이 왜 이혼 감인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분명 매일 집이 번쩍번쩍하고 모든 물건들이 제 위치에 있을 텐데. 배달음식이라 영양이 부실한 게 문제인 것인지, 이제 갓 낳은 핏덩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문제인 것인지, 일찍 보내지 않고 천천히 보내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근무시간에 맥주를 한 잔 한 것이 문제인 것인지. 집 환기할 겸 창문도 다 열어놓고 낮잠을 잤는데. 아이들 영양 문제도 말이다. 이유식을 회사별로 종류별로 다 시켜서 골고루 먹일 건데 말이다.



그렇게 약간 억지를 부리다 생각했다. 한 끼 한 끼 정성을 쏟아 만드는 아내의 노력이 너무 고맙고, 아이들 이유식도 매일 새로운 식재료를 듬뿍 넣어 만드는 정성이 대단하다고. 젊을 때는 그렇게 술을 마셨다더니, 첫째 임신 때부터 지금까지 7년을 넘게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 인내가 엄청나다고.


그래도 만약에 아내가 벌이가 생기고 여유가 생긴다면. 주부는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로마 집정관처럼 2인 체제로- 오늘은 내가 주부, 내일은 네가 주부.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슬기로운 주부생활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는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와 싸랑을-! 표한다.


포근하게 건조기에서 막 나온 따끈한 빨래더미에서 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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